[플랫폼 검증의 시간] 인공지능 or 알고리즘 전문가 역량 필요

지역/소상공인 / 김영호 기자 / 2023-01-06 23: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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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검증·사회적 통제 해야”
“취업규칙에 해당하는 정책 필요”

▲ 지난해 5월 제정된 스페인 라이더법에서는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 및 AI의 기초가 되는 매개변수, 규칙 등에 관한 정보를 노동자평의회에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의무는 배달 플랫폼만이 아니라 모든 플랫폼 기업에 적용되도록 규정했다.(이미지=gettyimagesbank)

 

“알고리즘을 취업규칙으로 보아 근로감독을 한다? 어색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현장에서는 매우 상식적인 얘기다.”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는 지난 11월 22일 라이더유니온·플랫폼희망찾기·공공운수노조·정의당 이은주 의원·노회찬재단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동 주최한 ‘플랫폼 알고리즘,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플랫폼 AI 해외 대응 사례 검토를 통한 대안 모색’을 주제로 토론에 나선 오 책임자는 “라이더는 산재보험·고용보험 대상이 돼 있어 점차 근로감독의 영역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면 근로감독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감독관이 오토바이 뒤에 타고 검증을 해야 하나? 당연히 배차 원리(일감 배정의 원리), 배달비가 결정되는 원리, 라이더들이 평균적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나 앱을 켜는 시간 규모를 서류로 요청하고 검토해 각종 노동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결국 알고리즘에 대한 설명 자료와 플랫폼 기업이 가진 빅데이터에 대한 노동법에 따른 분석자료 요청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 해외, 알고리즘 당연한 단체교섭 의제

유럽연합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플랫폼노동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입법 지침’에 따르면 ▲일감 배정 알고리즘 ▲가격 결정 알고리즘 ▲계정 정지 알고리즘 ▲등급·평점 알고리즘은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알고리즘이다. 이들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노동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문제 제기와 수정이 언제든 가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든 알고리즘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설명하고 협의하라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이러한 알고리즘은▲일감 배정 알고리즘 ▲등급(평점) 알고리즘 ▲계정 정지 알고리즘 ▲가격 결정 알고리즘 등 4가지로 구체화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제정된 스페인 라이더법에서는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 및 AI의 기초가 되는 매개변수, 규칙 등에 관한 정보를 노동자평의회에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의무는 배달 플랫폼만이 아니라 모든 플랫폼 기업에 적용되도록 규정했다. 스페인 노동법에는 사용자가 채택한 결정을 집행하기 전에 노동자 대표는 이에 대해 협의할 권리가 있다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의 끝에 ‘수학적 계산이나 알고리즘에서 파생된 경우를 포함해’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즉, 스페인 노동법은 알고리즘을 취업규칙 내지 단체협약으로 규율해야 할 노동조건으로 해석했다. 한국의 취업규칙 역시 제정·변경 과정에 노동자들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도록 하고 있다. 만일 불이익하게 변경되면 노동자 과반의 동의나 노동조합 동의를 구하도록 하고 있다. 단체협약으로 명시된 노동조건에는 무조건 노동조합과 합의를 해야만 변경 또는 시행할 수 있다. 스페인 최대 배달 플랫폼인 글로보(Glovo) 라이더들은 최근 노동자평의회 선출과정을 거쳐 노동조합별로 CCOO 출신 10명, UGT 출신 3명으로 총 13명을 선출했다. CCOO 노동조합은 지난 10월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 및 인공지능 관련 제반 정보 제공을 요구했다.

◇ 취업 규칙형·콘텐츠 노출·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은?

오 집행책임자는 알고리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분류법도 달라진다며 ▲취업 규칙형 알고리즘 ▲콘텐츠 노출 알고리즘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으로 나눠 설명했다.

오 집행책임자에 따르면 취업규칙형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당연히 취업규칙에 해당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알고리즘을 설명받을 권리를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부여하고, 고용노동부는 취업규칙에 해당하는 알고리즘에 대한 근로감독을 시행해야 한다.

오 집행책임자는 “일감이 어떤 원리로 배정받는지에 따라, 건당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따라 플랫폼 노동자들의 임금과 수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평점과 등급이 어떻게 매겨지는지에 따라 계정 정지나 일감배정 불이익 등 사실상 징계나 해고의 효과를 내기 때문에 이 역시 중요한 근로조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역시 운수회사의 배차순서 등을 정한 사항은 근로조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므로 단체협약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최근 배달의민족이 상용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자체 개발 내비게이션을 사용해 실제 주행거리보다 짧은 배달 거리를 적용해 배달료를 후려친다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라이더유니온은 사기죄로 고소·고발, 배달플랫폼노조는 단체교섭 요구 등으로 대응했다. 결국 배달의민족이 최근 상용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리즘 작동방식을 변경하는 데 합의했다.

전국대리운전노조 역시 1년 가까운 교섭 끝에 지난 10월 26일 카카오모빌리티와 체결한 단체협약에 ‘회사는 배정정책과 관련해 조합에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조합은 현장의 의견을 취합하여 제시하고, 노사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공동으로 인정하는 사항에 대해서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한다’는 조항을 명시했다. ‘배정정책’이 바로 일감 배정 알고리즘에 해당한다.

또 콘텐츠 노출 알고리즘과 관련해서는 현재 국내 배달 플랫폼은 2개의 앱이 동원되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고객과 음식점을 연결해주는 ‘주문 중개 앱’, 다른 하나는 음식점과 라이더를 연결해주는 ‘배달 중개 앱’이다. 이 가운데 배달 중개 앱에 사용되는 것이 취업 규칙형 알고리즘이다. 주문 중개 앱에서 사용되는 것은 콘텐츠 노출 알고리즘이다.

오 집행책임자는 “비용을 지출해 깃발을 몇 개 꽂느냐에 따라 고객의 스마트폰에 음식점 노출이 잘되도록 만들거나 프리미엄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음식점주에게 더 큰 비용을 지급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현상은 배달 플랫폼만이 아니라 온라인 매장에 상품을 진열해 판매·배송 업무를 대행하는 e-커머스 플랫폼에서도 비슷하게 발견할 수 있다”며 “또 네이버 쇼핑을 비롯한 온라인 비교쇼핑 서비스 역시, 잠재적 소비자가 구매하고자 하는 품목을 검색할 때 어떤 것을 먼저 노출할 것인지를 알고리즘으로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기서 입력값과 매개변수 등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노출 순서가 바뀌게 되며 이 값들을 조작해 네이버 자사 오픈마켓 상품이 더 많이 노출되도록 하는 ‘알고리즘 조작’이 공정거래위 당국에 적발돼 수백억의 과징금 처분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은 주로 검색 엔진이나 유튜브·틱톡 등 전시형 플랫폼에 자주 사용되며 주로 유저의 눈을 붙잡아두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광고를 보여주고 광고주로부터 익익을 얻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오 집행책임자는 “그러나 유저의 눈을 붙잡기 위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를 주로 추천한다든지, 여성과 약자가 취약해지는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있다는 내부고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이들 알고리즘에 대한 검증과 사회적 통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취업 규칙형 알고리즘 관련 ‘근로감독’ 차원에서 알고리즘 검증을 하고,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또는 자영업자 단체협약 원리를 적용해 콘텐츠 노출 알고리즘 검증도 하게 된다면 이 분야에 꽤 많은 전문가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알고리즘 검증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는 AI 또는 알고리즘 전문가 역량이 필요하다”며 “이번 기회에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위해 ‘알고리즘 검증사’라는 직업군을 형성해 인재를 양성하고 인력 풀을 형성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만이 아니라 다른 알고리즘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며 여기에도 수많은 알고리즘 전문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영호 기자 jli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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