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匠人 줌인] 한여름 산속 옹기 가마 8시간 동행 … 마지막 남은 김장독 장인의 여름

소상공인24 / 이지원 기자 / 2026-07-31 13: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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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홍천군 산속 옹기 공방, 70대 옹기 장인 정영수 씨의 40년 김장독 제작 현장
▶ 국내 김장독 전용 옹기 장인 47명 남음, 평균 나이 71세… “사라지면 되찾을 수 없는 기술”
▶ 옹기 가마 온도 1,250도, 폭염 속 가마 앞 40도 육박… 8시간 노동의 극한 환경
▶ 옹기 산업 시장 규모 130억 원, 30년 만에 85% 축소… 김치 대량 소비 시대의 그림자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게 AI(인공지능)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강원도 산속 옹기 공방에서 김장독을 다듬는 70대 옹기 장인. (사진 = 제미나이)

 

 

◇ 새벽 4시 15분, 산속 옹기 공방
7월 28일 새벽 4시 15분. 강원도 홍천군 서면의 한 산속 옹기 공방. 정영수 씨(72)는 이미 작업복을 입고 가마 앞에 서 있었다. 지난밤 시작된 옹기 굽기 마지막 단계, 가마 온도가 1,250도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여름에 옹기 굽는 게 지옥이야. 폭염 40도 위에 가마열 20도가 더해져. 그래도 김장독은 여름에 만들어야 가을 김장철에 배송하지”라는 그의 설명이다.


정 씨는 40년째 이 산속 공방을 운영해왔다. 1985년 스승 김삼수 장인(작고)에게 옹기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3년 도제 수업 후 1988년 이 자리에 자신의 공방을 열었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김장독은 총 4만 8,000개 이상이다.


◇ 국내 김장독 전용 옹기 장인, 47명 남음
한국옹기협회 통계에 따르면 국내 김장독 전용 옹기 장인은 2026년 현재 47명만 남았다. 30년 전(1996년) 380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88% 감소했다. 남은 47명 중 60대 이상이 44명(94%), 40대 이하는 단 3명이다.


옹기 산업 시장 규모도 급감했다. 2026년 국내 옹기 시장 규모는 130억 원. 1996년(880억 원) 대비 85% 축소됐다. 김치 대량 소비 시대와 함께 김장 문화의 축소, 아파트 거주 확산으로 김장독 수요가 급락한 결과다.


정 씨의 공방도 그 흐름 위에 있다. 1990년대에는 연 매출 3억 5,000만 원까지 올랐던 그의 공방은 지금 연 매출 8,500만 원 수준이다. “예전에는 김장철 앞두고 주문이 밀려 3개월 대기가 있었다. 지금은 주문받아 놓고 만드는 시대”라는 그의 회고다.


◇ 새벽 5시 30분, 가마 온도 1,250도
새벽 5시 30분, 가마 온도계가 1,250도를 가리켰다. 정 씨는 가마 안 옹기의 상태를 확인하는 ’불빛 검사’를 시작했다. 가마 안을 들여다보는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가마 앞 3m 거리의 대기 온도만 해도 42도가 넘었다. “이 순간이 40년 옹기 인생의 진수야. 옹기가 완벽하게 익었는지, 색이 정확한지, 결이 살아있는지 여기서 다 판단한다. 40년 감각으로만 알 수 있는 부분”이라는 그의 자부심이다.


옹기 굽는 과정은 총 72시간이 걸린다. 초벌 굽기 24시간, 유약 굽기 24시간, 본 굽기 24시간. 그동안 가마 온도를 6단계로 조절해야 한다. 이 온도 조절은 지금도 정 씨의 감각에 의존한다. 기계 계측기가 있지만, 최종 판단은 40년 경력의 눈과 코가 한다.


◇ 오전 9시, 완성된 김장독을 꺼내다
오전 9시 25분, 마침내 가마 문이 열렸다. 정 씨는 특수 장갑을 끼고 아직 뜨거운 김장독 12개를 하나씩 꺼냈다. 각 김장독의 무게는 약 45kg. 그가 40년 이 동작을 반복해오면서 그의 어깨·허리·손목은 이미 만성 통증에 시달린다. “한 번에 45kg짜리를 12개 꺼내면 몸이 부서지는 것 같아. 그래도 이거 안 하면 김장독이 완성 안 되니까”라는 그의 담담한 말이다.


완성된 김장독을 그늘로 옮기고, 표면 상태를 검사하고, 결함이 있는 것을 골라내는 데 다시 3시간이 걸린다. 정 씨의 여름 하루 노동 시간은 새벽 4시부터 정오까지 8시간이다. 오후에는 더위로 인해 작업을 중단하고, 다음 날 밤 다시 시작한다.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게 AI(인공지능)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뜨거운 가마 작업을 마치고 그늘에서 잠시 쉬는 옹기 장인. (사진 = 제미나이)



◇ “이 기술이 사라지면, 다시는 못 만든다”
정 씨의 가장 큰 고민은 후계자 문제다. 그의 아들(45세)은 직장인, 딸(41세)은 자영업자다. 둘 다 옹기 기술을 이을 계획이 없다. 정 씨의 도제로 3년간 훈련받다가 그만둔 젊은이가 지금까지 4명 있었다. 모두 “노동 강도가 감당 안 된다”는 이유였다. “이 기술이 40년 지나면 사라진다는 생각이 든다. 김치는 계속 있을 텐데, 진짜 김장독은 없어질지도 몰라”라는 정 씨의 우려다.


한국문화재청은 정 씨를 포함한 국내 옹기 장인 47명 중 12명을 ’무형문화재 전승자’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 정 씨도 2018년부터 지자체 지정 무형문화재 전승자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이 지원만으로는 옹기 산업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 옹기 산업 재생을 위한 새로운 시도
일부에서는 옹기 산업의 재생을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 김장독 소형화 (아파트 거주자 대상 미니 옹기 개발) ▲ 옹기 카페·체험장 개장 (옹기와 관광·문화 결합) ▲ 옹기 데코 상품 개발 (인테리어 용품, 화병, 저장 용기 등) ▲ 해외 수출 확대 (한류·K-푸드 열풍 활용) 등이 대표적이다.


정 씨의 조카가 운영하는 ’홍천 옹기 카페’는 옹기 공방을 관광 명소로 변모시켰다. 관광객이 옹기 제작 과정을 직접 볼 수 있고, 미니 옹기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카페 매출이 옹기 매출의 3배 이상으로, 옹기 공방의 새로운 수익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 사라져가는 것들을 지키는 사회적 노력
전문가들은 옹기 같은 전통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옹기는 한국 음식 문화의 근간이다. 김치·된장·간장 등 발효 음식의 저장 도구로서 옹기가 만들어낸 문화적 가치는 산업 규모로 환산되지 않는 무형 자산이다”라고 말했다.


옹기 산업의 축소는 한국 음식 문화의 축소와 직결된다. 아파트 거주 확산, 김치 대량 소비 시대에도 옹기가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집에서 발효 음식을 만드는 문화’가 여전히 우리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사라지면 되찾을 수 없는 기술을 사회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전통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시장 논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무형문화재 지원 확대, 도제 양성 지원, 전통 산업 관광 인프라 구축 등 종합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사라져가는 기술의 아카이빙과 젊은 세대의 관심 유도가 시급하다.


◇ “여름이 지나면, 또 한 번의 김장독이 완성된다”
정 씨의 여름 노동은 8월까지 이어진다. 그가 6~8월에 만드는 김장독은 총 200개 정도. 그 200개가 가을 김장철 전국의 가정에 배송된다. 그의 김장독을 30~40년 사용해온 단골 가정에서는 대를 이어 사용한다. “내 김장독이 어느 가정에 가서 그 집 김치가 되는 걸 상상하면 뿌듯해. 그 김치가 그 집 아이들의 밥상에 오를 걸 생각하면 이 노동도 견딜 만해”라는 정 씨의 미소다.


오후 12시 40분. 정 씨의 8시간 노동이 끝났다. 그는 산속 공방 앞 나무 그늘에 앉아 얼음물을 한 컵 마시고, 잠시 눈을 감았다. 산속의 매미 소리가 여름의 절정을 알렸다.


그의 옹기 공방은 강원도 산속에 조용히 서 있다. 그 안에서 40년 옹기 장인은 오늘도 김장독을 만들고 있다. 그 김장독 하나하나가 사라져가는 한국 음식 문화의 마지막 지지대다. 언젠가 정 씨가 은퇴하는 날, 이 공방과 이 기술은 어디로 갈까 — 그 질문에 대한 사회의 답이 필요한 시점이다.

 

 

소상공인포커스 / 이지원 기자 leejy05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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