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분석] 한국 중소기업은 왜 소비자를 직접 만나지 못하는가

기획/심층 / 김경훈 대기자 / 2025-06-03 10: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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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구조가 만든 거리
대만 TAITRA의 교훈, 전시회를 넘어 ‘데이터가 흐르는 산업 인프라’를 설계하라
▲ 한국 제조 중소기업이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도 자체 브랜드를 키우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마케팅 역량 부족이 아닌, 생산과 판매가 철저히 분리된 ‘단절된 산업 구조’에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플랫폼 입점 지원을 넘어 중소기업이 직접 소비자 데이터와 가격 결정권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 설계형 정책’으로의 전면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사진=소상공인포커스 DB)

 

수출 상담회와 산업단지 현장을 다니다 보면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제품 경쟁력은 충분하고 해외 인증도 확보했지만, 정작 “우리 브랜드로는 판매가 어렵다”는 말을 먼저 꺼내는 기업들이 많다. 대구 성서산업단지의 섬유·소재 기업이나 구미의 전자부품 기업들을 보면 생산 설비와 기술 축적 수준은 이미 글로벌 공급망 안에서 검증된 단계에 올라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판매 조직을 내부에 두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거래는 여전히 해외 상사, 브랜드 기업, 벤더를 통해 이루어지고, 기업이 확보하는 정보는 납품 물량과 단가 협상 결과뿐이다.


이 구조에서는 매출은 발생하지만 시장은 축적되지 않는다. 어떤 소비자가 왜 구매했고, 가격에 어떻게 반응했으며, 다음 시즌에 어떤 제품이 필요해지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기업 내부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은 쌓이지만 브랜드는 만들어지지 않는 상태가 반복된다.


이 현상을 단순히 “마케팅 역량 부족”으로 설명하기에는 구조적 제약이 너무 크다. 한국 제조 중소기업의 성장 경로는 오랜 기간 생산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고, 유통은 기업 외부의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즉 생산은 기업의 역할, 판매는 유통의 역할, 이라는 분업 구조가 고착되면서, 시장 정보가 생산 현장으로 되돌아오는 통로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온라인 플랫폼이 등장했지만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플랫폼에 입점했다는 사실만으로 시장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업들이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출 알고리즘, 글로벌 물류, 현지 고객 응대, 리뷰 관리, 재구매 유도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비로소 “시장”이 형성되는데, 현재의 지원 방식은 입점 단계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중소기업은 플랫폼 안에서도 또 다른 납품 구조에 머무르게 되고, 소비자 가격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

대만은 이 문제를 개별 기업의 노력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소비자를 만나는 접점 자체를 산업 인프라로 설계했다. TAITRA(대만무역발전협회)가 운영하는 전시 시스템을 보면 단순한 제품 전시가 아니라 현장 판매와 글로벌 주문이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물류·결제·바이어 매칭이 연결되어 있으며, 참가 기업은 전시 기간 동안 실제 소비자 반응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이 데이터는 다시 제품 설계와 가격 전략으로 이어지고, 다음 시즌 출품 구조에 반영된다.


또한 Pinkoi(핀코이)와 같은 대만 기반 글로벌 D2C 플랫폼은 중소기업이 자체 브랜드로 해외 소비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면서, 디자인·스토리·패키징·물류까지 통합된 구조를 제공한다. 이 플랫폼 안에서 기업은 단순한 공급자가 아니라 시장의 주체로 작동하고, 판매 가격 역시 납품 단가가 아니라 소비자 가격을 기준으로 설계된다.


◆ 구조 비교 – 산업 설계 차이


한국과 대만의 차이는 기업의 능력이 아니라 산업 설계 방식에서 나타난다. 한국은 생산 이후 판매 경로를 찾는 구조이기 때문에 “얼마에 팔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에 납품할 수 있는가”가 먼저 결정된다. 반면 대만은 판매 구조 안에서 생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최종 소비자 가격을 기준으로 원가 구조가 설계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유통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가격 결정권과 브랜드 형성 가능성을 가르는 핵심 조건이 된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온라인 입점 마케팅 교육 전시 참가 지원과 같은 개별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직접 판매 → 데이터 축적 → 제품 개선 → 재판매를 반복할 수 있는 공동 시장 구조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대구·경북 산업단지가 생산 클러스터에 머무르는 한 이 지역의 중소기업은 글로벌 공급망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자체 브랜드를 형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이 아니라 시장을 설계하는 정책을 시스템화 해야만 한다.

소비자와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산업 설계의 결과로 측정되는 것이다 .소비자와 공존하는 마케팅이 공감하는 시장을 창출 할 수 있는 것이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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