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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된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위한 국회 토론회(사진=참여연대)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 체계 부실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주요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글로벌 공급망의 경색으로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1400원대로 고공행진을 이어오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 들어 하락하고 있지만, 추세적으로 하락했다고 보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상반기까지 기준금리와 대출금리가 계속 오를 것으로 보여 기업들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이달 초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며 4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았다.
◇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제도 준수 의무 강력하게 규정”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본부장인 양창영 변호사는 “대내외적으로 복합적인 경제 위기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기존의 ‘납품대금 조정협의제’의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주요 수출기업들의 어려움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4월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발표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에 따르면 주요 광물 원자재 수요 비중이 높은 산업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이 기업 영업이익 악화에 미치는 수준이 크고, 광물 원자재 가격이 약 10% 상승하면 관련 수요가 높은 금속·비철금속제품 가공, 기계·장비, 운송(부품·장비) 산업에 속한 중소기업 영업이익은 각각 약 2%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매출 규모가 작을수록 원자재 가격 상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 영업이익 악화 수준이 더 높은데 이에 대해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해외 원자재를 수입·가공해 이를 원청기업에 중간재로 납품하는 소규모 하청기업들이 비용 인상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의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 실태 1차 점검 결과’를 보면 최근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하도급 업체 10곳 중 4곳은 납품단가를 조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 변호사는 “과거 2008 금융위기 발 원자재가격 폭등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도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실효성 없는 납품대금 조정제도만 도입했다”며 “다시 최근의 복합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물론, 여야 공히 납품단가연동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 도입이 시급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속된 거래계약 관계에서 하청기업들이 원청에 납품대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현장에서 실효적으로 작동 가능한 내용을 담아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이 형식에만 그치지 않도록 제도 준수 의무를 강력하게 규정하고, 원재료비뿐만 아니라 노무비, 기타 경비(공공요금·운임·임차료 등)에 해당하는 공급원가의 변동을 가능한 폭넓게 반영하고, 계속적 거래 계약에서의 공급원가 상승을 연동시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등 추가 개선 내용을 담은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해 하청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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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된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위한 국회 토론회(사진=참여연대) |
◇ “납품단가 연동제 시행, 국가경쟁력 높이는 길”
올해는 어느 때보다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진척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는 ‘원자재 기준가격’을 계약에 의무적으로 기재하고, 기준가격 대비 일정 비율 이상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별도 요청이 없어도 가격 변동분이 하도급 대금에 반영되도록 하고 조정된 납품단가를 반영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부과하는 이른바 ‘공급원가 자동연동제’ 입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원재료 폭등에도 중소기업에 적정한 납품단가를 보장하는 강제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의식한 듯 경영자 단체는 납품단가연동제에 따른 산업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인위적·강제적 법제화보다는 납품단가연동제 시행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통해 자율적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정부의 시장 개입에 따른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납품단가조정협의제' 활성화를 통해 대응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만재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하지만 2009년 이래 납품단가 조정 협의 신청은 단 한 건도 없었다”며 “대한민국의 중소기업 그 누가 감히 공식적으로 원청에 납품단가 인상을 요청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김 위원장은 “현저하게 낮은 수준으로 대금을 결정하는 행위는 명백한 불공정거래행위임에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안일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러한 현실은 제대로 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의 필요성이 너무나 자명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으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며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인상을 중소기업이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구조 속에서 최근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이 10~15%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재벌 대기업은 그동안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과실까지 독점하며 승승장구해 왔는데 이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며 “이제는 제대로 된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행하는 것이 중소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살리는 길이자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납품단가 연동제, 제대로 입법화해야”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납품대금 연동제를 제도화하기 위한 정치, 노동, 시민사회의 노력이 한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14년째를 맞고 있다고 한다”며 “지난 대선에서 다양한 정책 쟁점을 형성했지만, 주요 대선후보 간에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큰 틀의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고 양극화 해소의 대표적인 과제가 납품단가 연동제 제도화였다”며 “그러나 14년간의 입법 지체가 말해주는 것은 제도에 대한 공감대의 부족이 아니라 정치 책임성의 부재”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이명박 정부를 시작으로 박근혜, 문재인, 그리고 윤석열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난 정권이 한결같이 그 필요성을 인정했고, 집권하면 실현하겠다는 공약이었음에도 우리는 아직 이러한 불평등, 부정의, 불공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경제는 기존의 원하청 불균형에 더해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이라는 3중고를 겪고 있다”면서 “뿌리 기업과 중소하청업체, 그리고 그곳을 일터로 삼는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압박은 극심하다. 솔직하게 말해 종이 한 장만큼의 여지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너무 많은 기업과 노동자들이 절벽 앞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약속이나 말의 성찬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변화의 노력”이라며 “이번 국회에서는 납품단가 연동제를 제대로 입법화해 중소하청업체와 뿌리 산업 종사자, 그리고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구조적으로 강요받는 노동자들에게 실질적 개선의 효과가 주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진우 기자 jw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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