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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공지능(AI) 산업의 경쟁축이 반도체와 연산 성능을 넘어 안정적인 전력 확보로 확대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등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24시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이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다.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사진=챗GPT) |
인공지능(AI) 혁명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산업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알고리즘이나 반도체의 부족만이 아니라 전력의 부족이다. 생성형 AI와 초거대언어모델이 확산되면서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여기에 반도체 공장과 전기차, 로봇, 스마트팩토리, 클라우드 인프라까지 확대되면서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첨단산업의 입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으로 부상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는 하루 24시간 안정적으로 가동되어야 하기 때문에 태양광과 풍력처럼 발전량이 기상 조건에 영향을 받는 전원만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전력망 증설 역시 발전소 건설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AI 시대의 경쟁이 컴퓨팅 성능에서 시작됐지만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기술이 소형모듈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SMR)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출력을 낮추고 주요 설비를 모듈화해 공장에서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한다. 단순히 기존 원전을 작게 축소한 것이 아니라 건설방식과 안전체계, 운영방식까지 변화시키려는 새로운 원자력 플랫폼이다.
대형 원전은 한 기만으로도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건설기간이 길고 초기 투자비가 크다는 약점도 가지고 있다. 수조 원에서 그 이상의 자금이 장기간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인 만큼 공사가 지연되거나 건설비가 증가하면 사업 전체의 경제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SMR이 등장한 이유는 이러한 대형 원전의 구조적인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원자로와 주요 설비를 표준화하고 공장에서 반복 생산할 수 있다면 현장 공정을 줄이고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으며, 필요한 전력량에 따라 여러 모듈을 단계적으로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초기 투자비를 나누어 집행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민간기업과 산업단지, 데이터센터 사업자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작은 원자로가 곧 값싼 원자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발전설비에는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단순히 출력을 줄이면 단위 전력당 건설비가 오히려 높아질 수도 있다. 결국 SMR의 경제성은 크기를 줄이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표준화와 반복생산, 공기 단축, 금융비용 절감이라는 제조업적 혁신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 SMR이 특히 주목받는 분야는 AI 데이터센터다
기존 데이터센터는 대부분 전력망에서 전기를 공급받고 비상 상황에 대비해 발전기와 배터리를 구축하는 구조를 사용해 왔다. 그러나 데이터센터의 규모가 수백 MW, 장기적으로는 GW급까지 확대될 경우 지역 전력망만으로 필요한 전력을 적기에 확보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부지를 확보하고 건물을 건설할 능력이 있더라도 필요한 전력을 공급받지 못하면 사업 자체가 진행될 수 없다.
이런 환경에서는 발전시설을 데이터센터와 직접 연결하는 이른바 전력과 컴퓨팅 인프라의 결합이 새로운 사업모델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SMR이 충분한 경제성과 규제 안정성을 확보한다면 데이터센터 주변에 배치해 24시간 전력을 공급하는 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원전 특성상 탄소배출이 낮다는 점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추진하는 탄소중립 전략과 맞물린다. 결국 AI 산업의 성장으로 데이터센터가 늘어나고 데이터센터가 새로운 발전설비 수요를 만들어내면서 정보산업과 에너지산업의 경계가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SMR의 활용 범위는 데이터센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형 원전을 건설하기 어려운 산업단지와 광산지역, 도서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거나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된 부지의 송전망을 활용해 SMR로 대체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고온의 열을 산업공정에 공급하거나 수소를 생산하고 지역난방과 해수담수화에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향후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선박 추진이나 우주기지와 같은 특수환경까지 적용 영역이 확대될 수 있다. 이는 SMR이 단순한 발전설비가 아니라 전기와 열을 동시에 공급하는 분산형 에너지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의미한다. 대형 원전이 국가 전력망의 중심에 위치하는 거대한 발전소였다면 SMR은 필요한 장소 가까이에서 전력을 생산하는 보다 유연한 에너지 인프라를 지향한다.
● 세계 주요국이 SMR 개발에 뛰어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에서는 여러 원자로 개발기업이 서로 다른 설계방식으로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기존 경수로 기술뿐 아니라 고온가스로와 소듐냉각고속로 등 차세대 원자로 기술도 함께 개발되고 있다. 영국은 원전 산업과 항공엔진 분야에서 축적한 제조 역량을 활용해 표준화된 SMR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고, 캐나다 역시 SMR을 기존 원전 부지와 연계하는 전략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국가 주도로 소형 원자로 기술을 개발하면서 자체 에너지시장뿐 아니라 향후 해외 수출시장까지 겨냥하고 있다. SMR 경쟁은 결국 원자로 기술 하나의 경쟁이 아니라 설계 표준, 인허가, 핵연료, 제조 공급망, 건설금융, 운영서비스를 누가 하나의 패키지로 구축하느냐는 경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민간기업들의 전략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NuScale Power는 경수로 기반 모듈형 원자로 개념을 앞세워 미국 SMR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로 등장했지만, 프로젝트 경제성과 비용 문제를 둘러싼 현실적인 어려움도 경험했다. 이 사례는 SMR 산업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규제기관으로부터 설계 승인을 받는 것과 실제 발전소를 경제적으로 건설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반면 TerraPower는 차세대 원자로와 에너지저장 기술을 결합하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으며, GE Vernova Hitachi Nuclear Energy는 기존 원전산업의 경험을 활용한 SMR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영국의 Rolls-Royce SMR 역시 항공엔진 제조에서 사용해온 표준화와 공장생산 개념을 원전 건설에 적용하려 한다. 앞으로 SMR 시장의 승자는 가장 혁신적인 원자로 설계를 발표한 기업이 아니라 실제 첫 번째 발전소를 예정된 비용과 기간 안에 건설하고, 이후 동일한 모델을 반복 생산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지점에서 SMR 산업의 핵심인 FOAK(First-of-a-Kind)와 NOAK(Nth-of-a-Kind)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원자로의 첫 번째 상용 프로젝트는 설계 검증과 인허가, 공급망 구축까지 동시에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같은 설계의 원자로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생산하면 부품 표준화와 작업 숙련도 향상, 공정 최적화를 통해 비용을 낮출 수 있다.
SMR 산업이 주장하는 경제성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러한 반복생산 효과를 전제로 한다. 문제는 최초 몇 개 프로젝트의 높은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이다. 정부가 초기 시장을 지원하지 않고 민간자본만으로 첫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금융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질 수 있다. 반대로 국가가 초기 수요와 금융을 지원해 일정 규모 이상의 발주 물량을 확보하면 제조업의 학습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SMR은 기술산업이면서 동시에 정책과 금융이 시장 형성을 좌우하는 산업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 안전성 역시 SMR을 평가하는 핵심 요소다
일부 SMR 설계는 자연순환과 중력 등 물리적 원리를 활용하는 피동안전계통을 확대해 외부 전원이 끊어져도 원자로를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원자로 자체가 작아지면서 노심에 존재하는 핵연료와 잔열의 규모가 감소하는 것도 설계상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소형화가 모든 위험을 자동으로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기의 모듈을 동일 부지에서 운영할 경우 새로운 형태의 운영관리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사용후핵연료와 방사성폐기물 관리 문제 역시 남는다. 또한 원전이 산업시설이나 데이터센터에 보다 가까이 배치된다면 주민 수용성과 비상계획, 물리적 보안과 사이버보안 기준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도 중요해진다. SMR의 진정한 경쟁력은 ‘작아서 안전하다’는 홍보 문구가 아니라 규제기관과 시장이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안전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서 만들어질 것이다.
핵연료 공급망도 간과할 수 없다. 일부 차세대 SMR은 기존 대형 경수로와 다른 형태 또는 농축도의 핵연료를 필요로 한다. 특정 연료의 생산능력이 제한되어 있다면 아무리 원자로 기술이 우수하더라도 대규모 보급이 지연될 수 있다. 우라늄 확보에서 농축과 연료가공, 운송,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이르는 전체 주기를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원전산업은 반도체처럼 특정 핵심 소재나 장비의 공급 차질이 전체 산업을 멈출 수 있는 공급망 산업이다. 따라서 SMR 시장을 분석할 때 원자로 개발사의 기술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으며 핵연료와 주기기, 특수소재, 계측제어, 원전 서비스까지 전체 가치사슬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 대한민국에는 SMR 시대가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대형 원전의 설계와 건설, 운영 경험을 축적했으며 원자로 주기기와 터빈, 발전설비, 특수소재 등 폭넓은 원전 공급망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원전 경험이 부족한 국가가 단기간에 확보하기 어려운 산업 자산이다.
특히 글로벌 SMR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될 경우 모든 국가가 독자적인 원자로를 개발하기보다 경쟁력 있는 몇 개의 설계가 국제시장을 주도하고 각국 기업들이 공급망에 참여하는 형태로 산업이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대한민국은 반드시 한국형 SMR 전체를 수출해야만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자로 압력용기와 단조품, 증기발생기, 터빈, 제어시스템, 소재와 건설 엔지니어링 등 글로벌 SMR 밸류체인의 핵심 공급자로 자리 잡는 전략도 중요하다.
특히 한국 기업에 필요한 것은 ‘원전 수출’이라는 기존 관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원전 프로젝트의 고객은 국가 전력회사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사업자와 글로벌 빅테크, 산업단지 운영회사, 수소 생산기업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원자로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전력을 원한다. 따라서 발전소 건설과 전력구매계약(PPA),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운영·정비를 하나로 결합한 사업모델이 중요해질 수 있다. SMR을 제조업 제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장기 전력공급 사업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자본시장 관점에서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SMR 시장에 대한 장기 전망이 밝다는 것과 개별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원자로 개발기업은 상용화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인허가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을 소모한다. 일정이 몇 년 지연되면 추가 자금조달로 기존 투자자의 지분이 희석될 수 있으며, 첫 프로젝트의 건설비가 예상보다 높아지면 후속 수주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SMR 기업의 기술실사에서는 보유 특허의 숫자나 발표된 수주계획보다 규제 승인 단계, 실제 고객과의 계약 조건, 원자로 건설예산, 공급망 확보 여부, 현금 보유액과 향후 자금조달 계획을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또한 SMR은 재생에너지와 반드시 경쟁하는 기술이라고 볼 필요도 없다. 태양광과 풍력은 발전비용과 건설속도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발전량의 변동성이 존재한다. 원자력은 높은 이용률로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배터리와 전력망, 재생에너지, 원자력을 결합하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미래 전력시장은 하나의 기술이 모든 발전원을 대체하는 구조보다 지역과 산업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전원을 조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SMR의 시장성 역시 이러한 전체 전력 시스템 속에서 평가해야 한다.
⑨편에서 살펴본 핵융합 발전과 비교하면 SMR의 위치는 더욱 명확해진다. 핵융합은 성공할 경우 인류의 에너지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상업발전까지 상당한 기술적 검증이 필요하다. SMR은 핵분열이라는 이미 검증된 물리현상을 기반으로 하면서 원전의 건설방식과 사업모델을 혁신하려는 기술이다. 따라서 두 기술의 관계를 단순한 승자와 패자의 경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가까운 시기의 무탄소 기저전력 확대에는 SMR이 역할을 하고, 장기적으로 핵융합이 기술적·경제적 장벽을 넘어설 경우 또 다른 에너지 전환이 시작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와 전기화가 만들어내는 전력 수요가 그만큼 거대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실사의 종합적인 판단은 SMR의 핵심 리스크가 원자로의 작동 여부보다 경제성의 입증에 있다는 것이다. 원자로를 작게 만드는 기술만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공장에서 표준화해 생산하고, 건설기간을 줄이고, 첫 호기에서 발생하는 높은 비용을 반복생산을 통해 낮추며, 장기간 안정적인 전력 판매계약으로 금융비용까지 통제할 수 있어야 비로소 SMR은 기존 대형 원전과 차별화된 산업적 가치를 갖는다. 따라서 향후 몇 년간 세계가 주목해야 할 숫자는 발표되는 SMR 모델의 개수가 아니라 실제로 착공되고 준공되는 발전소의 건설비와 공기, 그리고 생산되는 전기의 가격이다.
● AI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역설적이다
세계는 가장 첨단의 디지털 기술을 만들기 위해 다시 가장 기본적인 산업 인프라인 전력을 고민하고 있다. GPU가 아무리 발전해도 전기가 없으면 AI는 작동하지 않고, 데이터센터를 아무리 많이 건설해도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으면 컴퓨팅 자산은 가동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SMR은 원자력산업 내부의 새로운 제품에 그치지 않는다. AI와 반도체, 데이터센터, 수소, 첨단 제조업을 연결하는 에너지 인프라의 새로운 선택지다.
결국 SMR 시대의 승자는 가장 작은 원자로를 만드는 기업도, 가장 먼저 화려한 청사진을 발표하는 국가도 아닐 것이다. 안전성을 규제로 증명하고, 표준화를 제조로 구현하며, 제조를 반복생산으로 연결하고, 반복생산을 경제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국가와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 역시 세계적인 원전 건설 경험을 과거의 산업 자산으로만 남겨둘 것인지, 이를 SMR이라는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으로 확장할 것인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AI 혁명의 진짜 병목이 반도체에서 전력으로 이동한다면 SMR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SMR의 가치는 원자로가 얼마나 작은가가 아니라 필요한 장소에 필요한 전력을 얼마나 안전하고, 빠르고, 경제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에서 결정된다. 바로 이 지점이 앞으로 세계 SMR 산업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술실사의 기준이 될 것이다.
소상공인포커스 / 서영현 기자 93oliv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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