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글로벌 수출전략⑮] K-방산 수출 2막이 열렸다…전차 한 대를 팔고 끝나는 시대는 지났다

소상공인 이슈&분석 / 서영현 기자 / 2026-10-05 10:43:54
  • 카카오톡 보내기
폴란드에서 시작된 현지생산·부품·정비 생태계, 한국 중소 제조기업에 새로운 유럽시장이 열리고 있다
▲ 글로벌 방산시장의 경쟁축이 완성 무기체계의 수출에서 현지생산과 기술협력, 부품조달, 유지·보수·정비(MRO)를 아우르는 장기 공급망 구축으로 이동하고 있다. 폴란드를 중심으로 K-방산의 유럽 진출이 현지 산업화 단계로 확장되면서 국내 중소·중견기업에도 소재·부품·장비와 후속지원 시장에 참여할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사진=챗GPT)

 


세계 방위산업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유럽의 안보 불안, 중동의 군사적 긴장, 각국의 국방비 증액이 맞물리면서 전차와 자주포, 다연장로켓, 항공기, 방공체계, 드론 등에 대한 수요가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2026년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나타나는 더 중요한 변화는 무기 수요 증가 자체가 아니다. 무기를 구매하는 국가들이 요구하는 계약의 내용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 세계 방산시장의 경쟁 기준이 달라졌다…무기를 사는 국가가 아니라 산업을 함께 만들 파트너를 찾는다

과거 방산 수출의 기본 구조는 비교적 단순했다. 수출국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구매국에 납품하고 일정 기간 정비와 부품을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대형 방산 계약에서는 현지생산과 기술협력, 현지기업 참여, 부품조달, 정비·보수·성능개량까지 하나의 패키지로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빠르다. 각국이 국방비를 늘리는 동시에 자국 방위산업의 생산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무기를 구매하더라도 모든 물량을 수입하기보다 자국 기업이 생산과 정비에 참여하도록 해 일자리와 기술, 제조 기반을 함께 확보하려는 것이다.
한국 방산기업의 유럽 진출을 이해할 때도 이 변화가 중요하다.


폴란드는 한국의 K2 전차,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FA-50 경공격기 등을 대규모로 도입하면서 K-방산의 대표적인 유럽시장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최근의 협력은 한국에서 생산한 장비를 폴란드에 가져다주는 단순 수출 단계를 넘어가고 있다.


현대로템의 K2 전차가 대표적이다. 폴란드는 2022년 1차 계약에 이어 2025년 K2 전차 180대 규모의 2차 계약을 추진했고, 이번 사업에는 폴란드 현지 조립·생산이 포함됐다. KOTRA가 2025년 폴란드 국제방산전시회(MSPO)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계약 물량 가운데 116대는 한국에서 생산하고 나머지 64대는 폴란드 국영 방산기업 부마르(Bumar)가 현지 생산을 담당하며, 폴란드형 K2는 2028년부터 현지 양산될 예정이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전차 공장 하나가 생긴다는 데 있지 않다. 전차 한 대를 생산하려면 엔진과 변속기, 포신, 장갑, 광학장비, 전자제어장치, 통신장비, 케이블, 센서, 유압장치, 베어링과 수많은 정밀가공 부품이 필요하다. 현지생산 비중이 확대되면 이러한 부품의 조달구조 역시 장기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즉 K-방산의 경쟁 무대가 완제품 가격과 납기 경쟁에서 누가 현지에 더 강력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폴란드 정부 역시 자국 방위산업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폴란드 국영 방산그룹 PGZ는 금융기관과 대규모 금융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고 생산능력 확충에 나섰으며, 약 1000개의 현지기업이 방산 공급망 참여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KOTRA는 전했다. 미국에서 도입한 에이브럼스 전차와 한국 K9 등 해외 장비의 정비와 현대화 사업에서도 폴란드 기업의 참여 확대가 예상된다.


여기서 한국 기업이 주목해야 할 것은 방산 수출의 경제적 가치가 장비를 인도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차와 자주포, 항공기 같은 무기체계는 수십 년 동안 운용된다. 그동안 소모품과 예비부품을 교체해야 하고 정기적인 정비가 필요하며 전자장비와 통신체계, 무장체계의 성능개량도 반복된다. KOTRA는 장비 생애주기 비용에서 후속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할 수 있다는 현지 분석도 소개했다. 결국 방산 수출의 진짜 시장은 완제품 계약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된다.

● 한화와 현대로템이 보여준 변화…K-방산은 '수출'에서 '현지 산업화'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 방산기업 가운데 현지화 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기업 중 하나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한화는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을 폴란드에 공급하는 것을 넘어 현지기업과 생산체계를 구축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천무의 폴란드형인 호마르-K는 폴란드산 Jelcz 8×8 차량에 탑재되고 여러 현지 부품과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한국과 폴란드 기업이 하나의 제품을 공동으로 완성하는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2025년 9월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폴란드 WB그룹이 천무용 사거리 80㎞급 유도탄을 현지에서 생산하기 위한 합작법인 설립에 최종 합의했다. 생산시설과 현지 인력을 확보하고 폴란드 공급을 시작한 뒤 장기적으로 다른 유럽 국가까지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이러한 현지화 전략이 실제 대규모 계약으로 연결됐다. 한화와 폴란드 측 합작법인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은 폴란드 군비청과 천무 CGR-080 유도탄 공급을 위한 약 40억달러 규모의 실행계약을 체결했다. 이것은 K-방산 수출 구조에서 상당히 중요한 변화다.

 

한국에서 무기를 만들어 폴란드로 보내는 구조에서 한국 기술과 폴란드 제조업이 결합해 현지에서 생산하고, 장기적으로 유럽시장까지 공급하는 구조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의 또 다른 계약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2025년 4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 국영 방산기업 HSW와 폴란드산 크라프(KRAB) 자주포에 들어가는 차체 구성품을 공급하는 4026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 무기체계 자체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한국이 보유한 플랫폼과 부품 기술을 현지 무기체계 공급망에 연결한 것이다. 방산 수출이 성공하면 이러한 사업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전차를 판매한 기업은 정비와 부품을 공급할 수 있고, 자주포를 판매한 기업은 탄약과 성능개량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다. 항공기를 판매하면 엔진과 항공전자장비, 훈련체계와 시뮬레이터, 정비시장까지 연결된다. 결국 무기체계 하나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되는 산업 플랫폼이 되는 구조다.
이것이 자동차나 가전제품 수출과 방산 수출의 중요한 차이다.


그러나 현지화가 한국 기업에 항상 유리한 것은 아니다. 현지생산 비율이 높아지면 일부 부품과 공정이 한국에서 해외로 이동할 수 있다. 구매국이 자국산 부품 사용과 기술이전을 강하게 요구할 경우 국내 협력업체가 기존 공급물량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유럽의 방산 블록화 역시 변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폴란드 현지 유도탄 생산을 추진하면서 유럽 방산시장 진입장벽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강조했다. 따라서 앞으로 K-방산의 경쟁력은 단순히 '한국산'을 얼마나 많이 판매하느냐로 평가하기 어렵다. 핵심 기술과 고부가가치 부품은 국내에서 확보하면서도 현지기업을 공급망에 참여시키고, 공동생산과 MRO를 통해 시장을 장기간 유지하는 정교한 산업전략이 필요하다.

● 중소기업의 진짜 시장은 전차가 아니라 전차 뒤에 따라오는 30년의 공급망이다
K-방산 수출 확대를 국내 중소기업이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생각은 "방산은 대기업 사업"이라는 인식이다. 완성 무기체계의 계약 주체는 현대로템이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과 같은 대기업이지만 전차와 자주포, 항공기 한 대를 만드는 데는 수많은 중소·중견기업이 참여한다.


정밀가공 부품, 특수금속, 베어링, 유압장치, 전원공급장치, 케이블과 커넥터, 통신장비, 광학장비, 센서, 열관리 시스템, 소프트웨어, 시험·검사장비 등 공급망의 상당 부분은 전문기업의 기술로 구성된다. 여기에 해외 현지생산이 확대되면 새로운 시장이 추가된다. 현지공장에는 생산설비와 자동화장비가 필요하고 품질검사 시스템과 시험장비도 필요하다. 장비가 군에 배치된 이후에는 정비공구와 진단장비, 소모품, 교육·훈련 시스템, 부품 물류와 창고관리까지 필요해진다. 따라서 한국 중소기업이 노려야 할 시장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생산 공급망이다. 기존 K2·K9·천무·FA-50 등에 들어가는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면서 수출물량 증가와 함께 성장하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이다. 두 번째는 현지생산 공급망이다. 폴란드 등 해외 생산기지가 확대될 경우 현지 공장에 필요한 제조장비와 자동화 시스템, 검사·시험장비를 공급하거나 핵심 부품을 한국에서 공급하는 방식이다.


세 번째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MRO와 성능개량 시장이다. 이미 수출된 장비가 늘어날수록 정비와 부품교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전자장비 교체, 성능개량 수요도 누적된다. 신규 무기 구매가 일시적인 대형 계약이라면 MRO는 장기간 반복되는 매출이 될 수 있다.


실제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접근도 시작되고 있다. 2025년 11월 KOTRA와 대전테크노파크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개최한 방산기술 비즈니스 교류회에서는 대전 지역 방산·드론기업 7개사가 1521만달러 규모의 수출상담을 진행했다. 완성 무기체계 수출이 국내 지역 중소기업의 해외 바이어 접촉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하나의 사례다.


KOTRA 방산물자교역지원센터도 중소·중견 방산기업을 대상으로 해외시장 조사와 현지 바이어 상담, 수출전문위원 멘토링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해외 네트워크가 부족한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방산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만큼 이러한 공공 인프라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방산 수출은 일반 산업재 수출과 다르다.


제품의 기술력이 있다고 바로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수출통제와 보안, 품질인증, 정부 승인, 현지 조달규정 등을 충족해야 하고 계약 이후에도 장기간 부품공급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방산 진출을 원하는 중소기업은 먼저 자신이 직접 완성 무기체계 시장에 진입하려 하기보다 기존 방산 대기업과 1차 협력기업의 공급망에서 어떤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민수산업 기술을 방산에 적용하는 전략도 중요하다. 정밀기계 기업의 가공기술, 자동차 부품기업의 센서와 전장기술, 드론기업의 비행제어 기술, 통신기업의 네트워크 기술, AI 기업의 영상분석 기술은 충분한 검증과 인증을 거친다면 방산 공급망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 유럽에서도 민간 제조기업의 방산시장 진입이 확대되고 있다. KOTRA가 조사한 폴란드 시장에서도 기존 세미트레일러 제조기업이 방산법인을 설립하는 등 민군 겸용 산업의 경계가 낮아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한국 기업에게 폴란드는 종착점이 아니라 시험대일 수도 있다. 폴란드에서 현지생산과 MRO 체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하면 다른 NATO 회원국과 유럽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레퍼런스가 만들어진다. 반대로 현지화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한국 기업이 처음 열어 놓은 시장을 현지 또는 다른 유럽기업이 가져갈 수도 있다. 그래서 K-방산의 두 번째 승부는 수주 금액이 아니다.


한국에서 만든 무기를 얼마나 많이 수출하느냐가 첫 번째 경쟁이었다면, 앞으로는 한국 기업이 해외에 만들어지는 방산 생태계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핵심 공급자로 남느냐가 경쟁력이 된다. 전차 한 대의 수출가격보다 그 전차가 20년, 30년 운용되는 동안 발생하는 부품과 정비, 성능개량 시장을 누가 확보하는지를 봐야 한다. 이 변화에 중소기업의 기회가 있다. K-방산의 진정한 수출효과는 대기업의 수주 실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소재·부품·장비기업이 해외 방산 공급망에 함께 들어가 반복적인 매출을 만드는 순간 완성된다.


※ Insight
K-방산의 다음 경쟁은 전차와 자주포를 몇 대 더 파느냐가 아니다. 현지생산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핵심 부품과 기술, MRO와 성능개량 시장을 한국 기업이 얼마나 오래 차지할 수 있느냐가 진짜 승부다. 대기업이 해외에서 문을 열었다면 이제 중소 제조기업이 그 문을 통해 글로벌 방산 공급망으로 들어가야 한다.

 

 

소상공인포커스 / 서영현 기자 93olivia@naver.com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전하는 언론 소상공인포커스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biz1966@naver.com

[저작권자ⓒ 소상공인포커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서영현 기자

서영현 / 경제부 기자

93olivia@naver.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