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분석] 핫플 성수의 그늘…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나는 1세대 상인들의 눈물

기획/심층 / 김영란 기자 / 2025-01-27 13: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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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임대료 3년 새 2~3배 폭등… '핫플레이스' 이면에 원주민 상인 대량 이탈
30년 된 정비소·인쇄소·봉제공장이 카페·갤러리에 밀려난다… 지역 정체성 상실 우려
상가 임대차 5년 보장도 소용없다… 계약 만료 후 "나가달라" 통보에 갈 곳 잃은 상인들
성수 이전 망리단길·을지로…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의 악순환 끊을 제도적 장치 절실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게 AI(인공지능)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트렌디한 카페에 둘러싸인 성수동 원주민 정비소 사장의 모습. (사진 = 챗GPT)

 

 

서울 성동구 성수동. MZ세대의 '핫플레이스'로 부상한 이 거리에 30년간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해온 장 모 씨(63)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작년에 임대료를 월 300만 원에서 800만 원으로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올 3월에 나가야 한다"며 "30년 넘게 이 자리를 지켰는데, 갑자기 돈 많은 카페·갤러리한테 밀려나는 기분"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성수동은 2010년대 후반부터 낡은 공장과 창고가 카페·갤러리·팝업스토어로 변모하면서 서울의 대표적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성동구에 따르면 2024년 성수동 일대 유동인구는 일 평균 15만 명으로, 2019년(7만 명)의 2배 이상 증가했다. 새로 오픈한 카페·음식점은 3년간 약 320개, 갤러리·팝업스토어는 약 150개다.


하지만 화려한 변신의 이면에는 원주민 상인들의 눈물이 있다. 성동구 소상공인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2022~2024년 3년간 성수동 일대에서 폐업하거나 이전한 기존 점포는 약 180곳으로, 이 중 70%가 임대료 인상을 이유로 들었다. 30년 이상 영업한 1세대 상인 42명 중 28명(66.7%)이 이 기간에 자리를 떠났다.

◇ 임대료 3배 폭등… "장사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임대료가 올라 못 버티는 것"

성수동의 상가 임대료 상승률은 서울 평균의 3배에 달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성수동 1가~2가 일대의 1층 상가 평균 임대료(3.3㎡ 기준)는 2024년 12월 기준 월 25만8,000원으로, 2021년(9만2,000원) 대비 180% 상승했다. 같은 기간 서울 평균 상가 임대료 상승률은 18.3%였다.


보증금도 급등했다. 성수동의 33㎡(10평) 규모 1층 상가 보증금은 평균 2억~3억 원으로, 3년 전의 5,000만~1억 원 대비 3~4배 뛰었다. 신규 입점 시 '권리금'까지 합산하면 초기 비용이 5억 원을 넘어서는 경우도 허다하다.


성수동에서 20년간 인쇄소를 운영해온 최 모 씨(58)는 "2년 전에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200만 원이었는데, 올해 재계약에서 보증금 2억, 월세 600만 원을 요구받았다"며 "인쇄소 수입으로는 도저히 감당 못 하니까 이전할 곳을 찾고 있는데, 30년 거래처가 다 이 근처라 멀리 가면 거래를 잃게 된다"고 진퇴양난의 처지를 호소했다.

◇ 상가임대차보호법의 한계… 5년이 지나면 무방비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에게 최대 10년간 계약갱신 요구권을 보장하고, 갱신 시 임대료 인상률을 연 5%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2018년 개정 전에는 5년이었던 계약갱신 요구권이 10년으로 늘어났지만, 이미 5년 이상 영업한 1세대 상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경과 규정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또한 10년의 보호 기간이 만료되면, 건물주는 시장 시세대로 임대료를 올릴 수 있어 사실상 무방비 상태가 된다. 성수동의 경우 2015년 이전에 입주한 상인들의 계약갱신 요구권이 속속 만료되면서, 대규모 임대료 인상과 퇴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 마을변호사 이 모 씨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지만, 핫플레이스화되는 지역에서는 그 안전장치가 10년이면 소용없다"며 "장기 영업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갱신 기간을 15~20년으로 확대하거나,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지역 특성에 따라 탄력 적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 옛 공장 건물과 신규 카페가 공존하는 성수동


◇ 망리단길·을지로·연남동… 반복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악순환

성수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2010년대 이후 서울의 '뜨는 동네'에서 반복되어온 악순환이다. 이태원 경리단길은 2013~2016년 전성기를 거친 후 임대료 폭등으로 원주민 상인 80% 이상이 이탈했고, 현재는 공실률이 30%를 넘어 '유령 거리'로 전락했다.


용산구 해방촌, 마포구 연남동, 영등포구 문래동 등도 비슷한 궤적을 밟고 있다. '독특한 로컬 문화 → SNS 바이럴 → 유동인구 폭증 → 프랜차이즈·대형 자본 유입 → 임대료 폭등 → 원주민 이탈 → 지역 정체성 상실 → 쇠퇴'의 패턴이 판에 박은 듯 반복되고 있다.


도시계획학자 정 모 교수(한양대)는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징은 속도가 극단적으로 빠르다는 점"이라며 "해외에서는 10~20년에 걸쳐 진행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한국에서는 3~5년 만에 전 과정이 완료된다. SNS의 확산 속도와 부동산 투기 문화가 결합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선언이 아닌 제도로 막아야

성동구는 2015년 전국 최초로 '성동구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했다. 건물주와 임차인 간 '상생 협약'을 체결하여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는 내용이다. 이 조례를 통해 성수동 일부 구역에서 임대료 인상이 억제되는 성과가 있었지만, 조례가 강제력이 아닌 자율 협약에 의존하는 한계도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자율 협약만으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수 없다"며 보다 강력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구체적으로는 임대료 상한제의 지역별 차등 적용, 장기 영업 소상공인에 대한 갱신권 확대, 건물주의 과도한 임대료 인상에 대한 과세 강화, 지자체의 상가 매입 후 장기 임대(커뮤니티 랜드 트러스트) 등이 제안되고 있다.


성수동의 화려한 네온사인 뒤에는 3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장인들의 눈물이 있다. '핫플레이스'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상인 추방은 지역 경제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결국 그 지역을 내실 없는 소비 공간으로 전락시킨다. 성수동이 경리단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금이 제도적 개입의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영란 기자 supu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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