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3.5% 장기화에 이자 부담 '임계점'… 연체율 1.2%로 5년 내 최고
다중채무 소상공인 120만 명 '시한폭탄'… 3곳 이상 금융기관 대출 보유
정부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실적 저조… 신청 조건 완화와 접근성 개선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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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게 AI(인공지능)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은행에서 대출 상담을 받는 다중채무 소상공인의 모습. (사진 = 챗GPT) |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공동 발표한 '2024년 4분기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소상공인(자영업자 포함) 대출 잔액이 2024년 12월 말 기준 1,103조 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1,100조 원을 돌파했다. 이는 전년 말(1,048조 원) 대비 5.2%(55조 원) 증가한 수치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급증한 자영업 대출이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불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영업자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약 1억6,200만 원으로, 연간 이자 부담만 580만~800만 원(금리 3.6~5.0% 기준)에 달한다. 서울 관악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손 모 씨(46)는 "창업 대출 8,000만 원, 운영자금 대출 5,000만 원, 신용대출 3,000만 원까지 총 1억6,000만 원을 빚지고 있다"며 "매달 이자만 65만 원인데, 영업이익이 200만 원이면 이자 내고 나면 생활비도 빠듯하다"고 호소했다.
더 심각한 것은 연체율의 가파른 상승이다. 소상공인 대출 연체율은 2024년 12월 기준 1.2%로, 2019년(0.4%) 대비 3배 상승했다. 금융감독원은 "연체율 자체는 아직 관리 가능한 수준이지만, 상승 속도가 빠르고 다중채무자 비율이 높아 잠재 리스크가 크다"고 경고했다.
◇ 다중채무 소상공인 120만 명… '시한폭탄'의 뇌관
금융감독원 분석에 따르면 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보유한 다중채무 소상공인은 약 120만 명으로, 전체 자영업 대출자(680만 명)의 17.6%를 차지한다. 이 중 5곳 이상에서 대출을 받은 '고위험 다중채무자'도 28만 명에 달한다.
다중채무 소상공인의 위험성은 한 곳의 연체가 다른 대출의 부실로 연쇄적으로 번지는 '도미노 효과'에 있다. 제1금융권 대출이 연체되면 제2금융권으로 갈아타고, 제2금융권마저 막히면 대부업으로 내몰리는 '빚의 나선(Debt Spiral)'에 빠지게 된다.
인천 부평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홍 모 씨는 "은행 대출 7,000만 원, 저축은행 3,000만 원, 카드론 2,000만 원, 보험약관대출 1,500만 원까지 4곳에서 총 1억3,500만 원을 빌렸다"며 "매달 이자만 합치면 90만 원이 넘는데, 가게 매출이 월 400만 원이면 임대료·인건비·이자 내고 나면 적자"라고 고백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 모 선임연구위원은 "다중채무 소상공인 120만 명은 경기 침체가 심화될 경우 대규모 부실로 전이될 수 있는 잠재적 시한폭탄"이라며 "선제적 채무조정과 경영 컨설팅을 병행하여 부실화를 예방하는 것이 금융 안전망의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 새출발기금, 기대에 못 미치는 채무조정 실적
정부는 2022년 10월 '새출발기금'을 출범시켜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의 채무조정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출범 2년여가 지난 현재, 채무조정 실적은 당초 목표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새출발기금 운영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채무조정 신청 건수는 누적 18만7,000건이지만, 실제 조정 완료 건수는 12만3,000건에 그쳤다. 조정 승인률은 65.8%로, 3건 중 1건은 조건 미충족으로 반려되고 있다. 특히 "부실 징후가 있지만 아직 연체가 발생하지 않은" 소상공인은 기금 신청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적 한계가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김 모 씨(51)는 "대출 이자를 겨우 내면서 버티고 있는데, 연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새출발기금을 신청할 수 없다고 했다"며 "연체를 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 성실하게 갚는 사람이 바보 되는 세상"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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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게 AI(인공지능)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소상공인 대출 서류가 쌓여 있는 은행 창구의 모습. (사진 = 챗GPT) |
◇ '예방적 채무조정' 도입… 부실 전 단계에서 개입해야
금융 전문가들은 현행 채무조정 시스템이 '부실이 발생한 후'에야 개입하는 사후적 구조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팀은 "연체가 발생하기 전, 매출 급감·영업이익 적자 등 부실 징후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채무조정에 나서는 '예방적 채무조정(Preventive Debt Restructuring)'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국세청의 매출 데이터와 신용정보원의 대출·연체 정보를 연계하여, '부실 위험 지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소상공인에게 먼저 채무조정과 경영 컨설팅을 안내하는 시스템이다.
영국의 경우, 금융행위감독청(FCA)이 2020년부터 '호흡 공간(Breathing Space)' 제도를 시행하여,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개인사업자에게 60일간 이자 동결과 추심 유예를 부여하고, 그 기간 동안 전문 상담사를 통한 채무조정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 1,100조 시대, 소상공인 금융 안전망의 전면 재설계가 필요하다
소상공인 대출 1,100조 시대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자영업자 680만 명과 그 가족을 합치면 약 1,500만 명, 전 국민의 30%에 해당하는 인구가 이 부채의 영향권 아래 있다. 금리 1%포인트 상승은 소상공인 전체에 약 11조 원의 추가 이자 부담을 안기며, 이는 곧 소비 위축과 내수 침체로 이어지는 거시경제적 파급력을 갖는다.
한국금융학회 김 모 회장은 "소상공인 부채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직결되는 거시 리스크"라며 "새출발기금의 대상 확대, 예방적 채무조정 도입, 저금리 정책자금 확충, 다중채무자 전용 통합 관리 시스템 구축 등 금융 안전망의 전면적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침체가 겹치는 2025년, 소상공인 대출의 뇌관이 터지지 않도록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빚으로 시작해 빚으로 무너지는' 자영업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이 정부와 금융당국에 주어진 가장 긴급한 과제다.
소상공인포커스 / 이경희 기자 leegh0224@biz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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