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장애인 고용과 사회적 기업가치의 사회적 의미

소상공인 심층/기획 / 서영현 기자 / 2026-03-20 13: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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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베터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바꾸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 장애인 고용이 수십 년간 제자리걸음인 이유는 개인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완결된 숙련도를 요구하는 기존의 직무 설계 방식에 있다. 서울의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는 사람을 일에 맞추는 대신 일을 사람에게 맞게 잘게 쪼개는 '공정 재설계'를 통해, 장애인 고용을 복지의 영역에서 지속 가능한 시장 논리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사진=pexels)

 

장애인 고용이 어려운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기업은 늘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말한다. 생산성이 낮고, 업무 적응이 어렵고, 관리 비용이 높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수십 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애인 고용은 보호의 영역에 머물렀고, 시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나 현장을 들여다보면 질문은 달라진다. 정말 장애인이 일을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의 일이 특정한 방식으로만 설계되어 있는 것일까. 서울의 베어베터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곳의 작업장을 보면 일반 공장과는 구조가 다르다. 하나의 작업을 한 사람이 끝까지 처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작업이 잘게 나뉘어 있다. 인쇄 공정이라면 출력, 분류, 정렬, 포장으로 분리되고, 제과 작업이라면 반죽, 성형, 굽기, 포장이 각각 다른 단계로 나뉜다. 각 단계는 단순하지만 반복 가능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업자는 자신에게 맞는 단계에 배치된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배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산 구조를 바꾸는 선택이다. 기존 기업은 사람을 기준으로 일을 설계한다. 한 사람이 일정 수준 이상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이곳은 일을 기준으로 사람을 배치한다. 작업을 가능한 단위까지 쪼개고, 그 단위에 맞는 사람을 배치한다.


현장에서 보면 이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반 작업장에서는 한 명이 처리하던 작업이 이곳에서는 여러 사람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한 사람이 멈추면 전체가 멈추는 구조가 아니라, 여러 단계가 연결되어 돌아가는 구조다. 이 구조에서는 개인의 속도보다 전체 공정의 안정성이 중요해진다.


장애인을 위한 특수 구조가 아니라, 오히려 산업적으로 더 효율적인 구조에 가깝다. 반복 가능한 공정으로 나누어진 작업은 숙련 속도를 빠르게 만들고, 오류를 줄이며,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결국 ‘할 수 있는 사람만 하는 일’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일’로 바뀌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여기서 고용이 먼저가 아니라 구조가 먼저라는 사실이다. 일을 쪼개고, 흐름을 만들고, 역할을 나누는 설계가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안에서 고용이 가능해진다. 기존 방식처럼 사람을 채용한 뒤 적응시키는 구조와는 방향이 반대다. 결국 베어베터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해 기업이 변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꿨다는 점이다. 이 차이가 이후의 모든 결과를 만든다.

● 베어베터는 ‘고용’을 거래 구조로 바꿨다
서울 성동구 일대에 위치한 베어베터의 사업장은 일반적인 사회적기업과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이곳은 단순히 장애인을 고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기업 간 거래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생산 현장이다. 베어베터는 인쇄, 판촉물 제작, 사무용품, 제과 생산 등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매출은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 거래에서 발생한다. 특히 대기업과의 연계 구조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기업의 핵심은 ‘장애인을 고용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고용 자체를 하나의 거래 구조로 만든 데 있다. 대표적인 방식이 바로 장애인 연계고용 모델이다. 일반 기업은 법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직접 고용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베어베터는 이 지점에서 구조를 만든다.


기업은 베어베터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고, 그 대가로 장애인 고용 의무 일부를 인정받는다. 이 구조는 단순 납품 관계가 아니라, 고용과 거래가 결합된 형태다. 즉, 기업은 비용을 줄이고 베어베터는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며 장애인은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현장에서 보면 이 구조는 더욱 명확하다. 주문은 특정 시기에 몰리지 않고 일정하게 들어오며, 작업 역시 이에 맞춰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일반 사회적기업이 겪는 가장 큰 문제인 수요의 불안정성이 이곳에서는 상대적으로 낮다.


또한 이 모델은 단순히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넘어, 고용의 지속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기 프로젝트나 지원금에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 실제 시장 거래를 기반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결과적으로 기존 장애인 고용의 한계를 뒤집는다. 비용으로 인식되던 고용이 거래 구조 안으로 들어오면서, 기업 입장에서도 선택 가능한 옵션이 된다. 결국 베어베터가 만든 것은 단순한 사회적기업 모델이 아니다.
 

▲ 장애인 고용을 비용이나 부담으로 여기던 기존의 틀을 깨고, 베어베터는 누구나 참여 가능한 '세분화된 공정'을 구축하여 생산성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일을 사람에게 맞추는 구조적 혁신과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는 연계고용 모델은 장애인 고용이 단순한 사회 공헌을 넘어 효율적인 시장 모델로 자리 잡게 하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사진=소상공인포커스 DB)

● 고용을 비용이 아닌 시장 구조로 전환한 모델이다.
장애인 고용은 지원이 아니라, 거래 구조 안에 들어올 때 지속 된다. 생산성은 낮은 것이 아니라, 설계되지 않은 것이다. 베어베터는 기술이 아니라 ‘공정 구조’로 생산성을 만든다. 장애인 고용이 시장 안에서 확장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생산성에 대한 고정된 인식에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동일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했을 때 더 높은 결과를 내는 구조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이 기준에서 장애인 고용은 늘 불리한 조건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이 판단은 사람의 능력을 기준으로 한 평가일 뿐, 생산 구조 자체에 대한 질문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베어베터의 작업 현장은 이 지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이곳에서는 생산성을 사람의 속도나 숙련도에서 찾지 않고, 공정의 구조와 흐름에서 찾는다. 즉, 특정 개인이 얼마나 빠르게 일을 수행하는가보다, 전체 작업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어지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를 위해 작업은 처음부터 다시 설계된다. 하나의 공정을 단순 반복이 가능한 최소 단위로 나누고, 각 단계는 명확한 역할과 동선을 가지도록 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판단이나 복잡한 작업은 제거되고, 작업자는 자신이 맡은 공정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개인의 편차가 전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고, 대신 공정 전체의 안정성이 생산성을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현장에서 보면 이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반 생산 환경에서는 한 명의 작업자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 전체 흐름이 느려지지만, 이곳에서는 각 공정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단계에서 속도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전체 흐름은 유지된다. 이는 단순히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오히려 산업적으로 더 안정적인 생산 구조에 가깝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설비와 환경의 역할이다. 베어베터는 생산성을 사람에게만 요구하지 않고, 작업 환경 자체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반복 작업이 가능한 공정에는 자동화 장비를 도입하고, 작업 동선을 최소화하며, 시각적·물리적 요소를 단순화함으로써 작업자가 혼란 없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 과정에서 기술은 생산성을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공정 구조를 완성하는 보조 요소로 작동한다.


이러한 방식은 결과적으로 품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정이 표준화되고 반복 가능하게 설계되면 작업 결과의 편차가 줄어들고, 이는 불량률 감소로 이어진다. 동시에 작업자가 특정 공정에 집중하게 되면서 숙련도가 빠르게 쌓이고, 이는 다시 작업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는 구조를 만든다. 생산성과 품질이 동시에 확보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 모델이 보여주는 핵심은 명확하다. 생산성은 개인의 능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어떻게 나누고 연결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기존 산업 구조에서는 사람이 공정에 맞춰야 했지만, 이곳에서는 공정이 사람에 맞게 설계된다. 이 차이가 장애인 고용을 가능하게 만든다. 생산성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다.

● 베어베터는 ‘고용 모델’이 아니라 ‘구조 모델’을 만들었다
장애인 고용이 오랫동안 복지 영역에 머물렀던 이유는 구조의 부재에 있다. 개별 기업이 고용을 시도하더라도 생산성과 비용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어려웠고, 결국 단기적이거나 제한적인 형태로만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일정 규모 이상의 고용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의 의지나 지원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며, 고용 자체가 반복 가능한 구조로 작동해야 한다.


서울 성동구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베어베터의 사례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이곳의 핵심은 특정 기업의 성공이 아니라, 동일한 방식이 다른 영역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즉, 단일 사업장의 성과가 아니라, 확장 가능한 모델을 구축했다는 점이 본질이다.


이 구조는 세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직무 재설계를 통해 누구나 참여 가능한 공정을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기업과 연결된 거래 구조를 통해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는 것이며, 셋째는 공정 중심 설계를 통해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결합되면서 고용은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형태로 전환된다.


중요한 점은 이 구조가 특정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인쇄, 포장, 제과, 사무 지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동일한 방식이 적용될 수 있으며, 이는 곧 산업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 모델은 단순한 생산 영역을 넘어 기업 서비스 영역까지 확장되며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또한 이 구조는 소상공인 중심 산업과의 연결 가능성도 높다. 기존 소상공인 사업장은 인력 운영에 있어 높은 유연성을 요구받지만 동시에 생산성과 비용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작업을 세분화하고 공정을 재설계하는 방식은 소규모 사업장에서도 적용 가능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반복 작업이 많은 업종에서는 동일한 구조를 도입함으로써 인력 활용의 폭을 넓히고, 동시에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흐름은 장애인 고용을 하나의 특수 영역이 아니라 일반 산업 구조 안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고용이 지원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생산과 거래의 일부로 작동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산업으로서의 기반이 형성된다.


결국 베어베터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성공 사례가 아니다. 특정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한 것이 아니라, 고용이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를 확장 가능한 형태로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모델이 가지는 힘은 개별 사례에 있지 않다. 동일한 방식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반복이 시장 안에서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고용은 지원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로 반복될 때 산업이 된다.


● 장애인 고용은 ‘복지’가 아니라 ‘구조 설계’다
장애인 고용을 바라보는 기존의 시선은 대부분 비용과 부담에 머물러 있었다. 기업은 의무를 충족하기 위해 고용을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의 문제는 늘 뒤로 밀려나거나 별개의 문제로 취급되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고용이 지속되기 어렵고, 결국 특정 시점에만 유지되는 제한적인 형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선 사례에서 확인되는 흐름은 분명히 다르다. 고용을 사람 중심이 아니라 구조 중심으로 재설계하고, 이를 시장과 연결된 형태로 전환하는 순간, 장애인 고용은 더 이상 비용이 아니라 작동 가능한 시스템으로 바뀐다. 이 변화는 단순히 한 기업의 성공을 넘어, 노동과 생산의 구조 자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베어베터가 보여주는 핵심은 장애인을 특별한 인력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산업 구조가 놓치고 있던 방식을 끌어낸 데 있다. 즉, 모든 작업을 일정 수준 이상의 숙련을 요구하는 형태로 유지할 필요가 없으며, 공정을 분해하고 연결하는 방식으로 누구나 참여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다.


소상공인 시장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인력 확보가 어려운 환경에서 동일한 방식의 직무 재설계와 공정 분해가 이루어진다면, 기존에는 활용되지 못했던 인력이 새로운 생산 요소로 편입될 수 있으며, 이는 단순한 고용 확대를 넘어 사업 구조 자체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반복 작업이 중심이 되는 업종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비용 절감과 운영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이 모델은 고용 정책의 방향에도 질문을 던진다. 지원을 통해 일자리를 유지하는 방식은 일정 수준까지는 효과가 있지만, 시장과 연결되지 않는 구조에서는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반면 구조 설계를 통해 고용이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환경을 만든다면, 정책은 보조가 아니라 촉진의 역할로 전환될 수 있다.


결국 이 사례가 말하는 바는 단순하다. 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이 가능하도록 구조를 만들었느냐의 문제다. 그리고 그 구조가 시장 안에서 반복될 수 있을 때, 고용은 복지의 영역을 넘어 산업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 장애인 고용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 설계의 문제다.

 

 

소상공인포커스 / 서영현 기자 93oliv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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