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자산으로 인정하는 금융·교육 시스템, 재도전 가로막는 신용 장벽 허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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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의 창업은 철저히 '숙련' 위에서 출발한다. 일정 기간 이상의 직무 교육과 현장 실습을 거쳐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된 후에야 비로소 창업의 길이 열린다. 이러한 직업의 연속성이 창업 이후의 높은 생존율을 보장하는 핵심 동력이 된다.(사진=pexels) |
대한민국에서 창업은 여전히 ‘도전’의 서사로 소비된다. 그러나 유럽에서 창업은 도전이 아니라 하나의 직업 경로로 작동한다. 이 차이는 개인의 성향이나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설계 방식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창업을 장려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정책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창업 이후의 생존을 설명하는 구조는 비어 있다. 반면 유럽은 창업이라는 결과 이전에 준비 과정 자체를 제도의 핵심으로 만든다.
한국의 창업 정책은 여전히 자금 중심으로 움직인다.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은 업종에 대한 숙련 교육이나 현장 훈련이 아니라 지원금 공고다. 정책의 출발점이 역량이 아니라 자금이라는 의미다. 이 구조에서는 창업이 준비의 결과가 아니라 지원사업의 결과로 나타난다. 지원금을 받기 위한 계획서가 사업 계획보다 먼저 만들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업의 본질이 시장에서의 생존 능력이라면 현재의 정책 흐름은 출발선부터 방향이 어긋나 있는 셈이다.
유럽의 창업 시스템은 정반대의 흐름을 가진다. 일정 기간의 직업 교육과 현장 실습을 통해 해당 업종의 숙련도를 확보하지 못하면 창업 자체가 쉽지 않다. 창업은 교육과 노동의 연장선에서 등장한다. 그래서 창업의 수는 많지 않지만 생존율은 높다. 창업 이전 단계에서 이미 시장에 대한 이해와 운영 경험을 축적하기 때문이다. 창업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숙련된 기술과 경험 위에서 출발한다.
이 차이는 폐업 이후의 구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에서 폐업은 곧 신용 하락으로 연결되고 금융 접근성이 급격히 낮아진다. 재도전은 제도적으로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새로운 출발이 어려운 구조다. 반면 유럽은 실패를 경력의 일부로 인정한다. 재창업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금융 시스템이 분리되어 있고 실패 경험은 배제의 이유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위한 자산으로 활용된다. 실패 이후에도 다시 시장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경로가 존재한다는 점이 창업 생태계의 질을 결정한다.
정책 집행 방식의 차이도 크다. 한국은 창업 지원 사업이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고 각각의 사업이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창업자는 동일한 서류를 반복 제출하고 비슷한 교육을 여러 번 받아야 한다. 정책이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은 직업 교육, 창업 준비, 금융 지원, 사후 관리가 하나의 경로로 이어진다. 창업을 단위 사업이 아니라 직업 생애 주기의 일부로 보기 때문이다. 이 연속성이 창업 생존율을 만든다.
지금 한국의 창업 정책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원 사업의 추가가 아니라 구조의 재설계다. 창업 이전의 장기 훈련 과정, 실패 이후의 복귀 경로, 정책 간의 연속성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창업을 권하는 사회에서 창업이 생존 가능한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제도의 설계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소상공인포커스 / 서영현 기자 93oliv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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