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시대’ 투명성 어디쯤] 알고리즘, 작업장 그 자체의 일부

지역/소상공인 / 김영호 기자 / 2023-01-02 21: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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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기사, 알고리즘 적용 결과 발생하는 문제 해결 요구해야
“노동과정에서 알고리즘 지배력 더욱 강화”

▲ 배민커넥트 온라인 홈페이지(이미지=배민)

 

“알고리즘은 일감 배분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를 평가하고, 업무 과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아울러 알고리즘은 배달이라는 업무 자체가 이루어지는 환경을 제공한다. 배달앱 서버가 오류가 나서 앱 연결이 끊어지면 도로를 달리던 배달노동자들은 모두 갈 곳을 잃는다.”


라이더유니온의 박수민 연구원이 지난 11월 22일 라이더유니온·플랫폼희망찾기·공공운수노조·정의당 이은주 의원·노회찬재단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동 주최한 ‘플랫폼 알고리즘,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알고리즘 검증 실험 결과를 내놓고 이같이 밝혔다.

박 연구원은 “2022년 실험 결과를 해석하면 배달물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배달노동자들의 수입과 노동과정에 대한 알고리즘의 지배력이 더욱 강화됐다고 할 수 있다”며 “2021년 알고리즘 배차를 거절하는 것이 수입과 노동강도 면에서 보다 효율적인 방식을 찾는 대안이 됐다면 2022년 결과는 수입과 노동 강도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즉, 노동시장의 전반적인 조건이 악화하면서 알고리즘 보스와의 협상력이 약화하는 상황인 셈이다.

박 연구원은 “노동조건의 변화, 노동시장 상황과 노동조건 사이의 역동성에 대해 파악한 것은 물론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음식 배달이라는 특정 업종의 노조로서 알고리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며 “알고리즘 검증 실험은 일을 시키는 ‘알고리즘 보스’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일을 시키고 있는가, 과연 이 보스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노동자들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할 수 있는가를 따져보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2021년 크리스마스에 배민에서 몇 시간에 걸친 장애가 발생하는 바람에 배달노동자들은 배달하던 음식을 배달통에 실은 채 몇 시간을 거리에서 대기해야 했다”며 “이는 배달노동자들의 핸드폰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앱과 알고리즘이 실제적인 업무의 공간을 구성하는 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알고리즘은 ‘보스’를 넘어서 ‘작업장’ 그 자체의 일부”라며 “공장이 산업화 시대에 자본과 기술이 결합한 형태였다면 애플리케이션과 알고리즘은 디지털 경제 시대에 자본과 기술이 결합한 형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배달노동자를 비롯한 이동노동자들은 고정된 노동 장소가 없으므로 노동 공간과 관련된 여러 규제나 보호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이처럼 기술의 발전이 일하는 방식을 크게 바꾸어 놓는 상황에서 작업장의 개념 자체도 보다 넓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라이더유니온의 박수민 연구원은 "음식 배달이라는 업종의 노동조합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알고리즘의 투명성이나 설명책임이 아니라 알고리즘 적용 결과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일 것”이라고 말했다.(이미지=freepik)


◇ “알고리즘 문제 파악, 여전히 큰 도전”

박 연구원은 디지털 시대 알고리즘으로 변화하는 작업장의 범위에 대한 고민과 함께 짚어볼 또 다른 문제는 무엇을 위한 투명성과 설명이냐는 점을 들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주도한 모빌리티 투명성 위원회는 최근 카카오T 택시 배차 알고리즘을 검증했다. 위원회는 “목적지 정보 표시 없이 자동 배차되는 가맹 기사와 목적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일반 기사 사이에 배차 수락률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는 일반 기사의 선택적인 콜 수락으로 생긴 차이”라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모빌리티 위원회의 설명은 기술에 대한 설명이 노동문제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알려준다”며 “데이터 공개와 알고리즘 투명성, 알고리즘 설명책임에 대한 논의는 알고리즘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첫 단계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음식 배달이라는 업종의 노동조합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알고리즘의 투명성이나 설명책임이 아니라 알고리즘 적용 결과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일 것”이라며 “이를 위해 현장에 밀착한 노조의 역할은 알고리즘에 대한 보편적인 입장이 아니라 해당 업종의 알고리즘과 관련한 구체적인 문제 제기”라고 말했다.

그는 “알고리즘 투명성과 설명책임이 피부에 와닿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무엇이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정보가 필요하고, 그 정보를 토대로 어떠한 요구를 할 수 있으며 그 요구를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수용했는지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에 대한 요구와 답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배민의 배달 거리 측정방식이 직선거리에서 사용내비를 이용한 실거리 측정으로 바뀐 것은 일반적인 해결이 아니라 배달업 특수한 구체적 문제를 꾸준하게 제기한 덕”이라며 “알고리즘 투명성, 알고리즘 설명이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질문이 뾰족해져야 한다”고 했다.

배달 거리 측정 사례에서처럼 노동자의 요구가 명확하고, 그 요구가 반영됐는지, 그 진행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살펴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설명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픽업거리 배달요금 책정이나 실거리 책정과 같을 때 매우 명백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왜곡이었기 때문에 문제 파악과 문제 제기가 직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박 연구원은 “이러한 가시적인 문제를 넘어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여전히 큰 도전으로 남아있다”며 “이러한 고민 자체가 다소 기술 중심적 사고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노동조합이 겨냥해야 하는 목표는 궁극적으로 알고리즘이 아니라 노동조건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단체협약이 있는 배민은 쿠팡보다 최저요금의 수준 자체가 높게 형성된다는 점은 단체협약을 비롯한 사회적 과정을 통해 최저요금 수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현실적인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면서 “다만 어느 정도의 요금이 안전을 담보하는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수준에 대해 배달노동자들이 동의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이고도 복잡한 문제도 뒤따른다”고 봤다.

박 연구원은 “고정적인 근로계약 없이 건당 보수를 받고 일하는 방식의 노동시장에서, 그리고 이에 따른 유연성을 노동자들도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장에서 이러한 접근이 어떠한 방식으로 가능할 것인가는 더욱 근본적인 질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영호 기자 jli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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