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한국 중소기업은 왜 해외에서 실험할 공간이 없는가

소상공인 심층/기획 / 김경훈 대기자 / 2025-11-18 11: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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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진입 전 검증 구조의 부재
대구·경북의 기술력, '진출'을 넘어 '정착'으로 이끄는 현지 거점 절실
▲ 수만 달러의 상담 실적이라는 화려한 '숫자' 뒤에는, 전시회가 끝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단발성 거래와 기업의 고립된 분투가 숨어 있다. 한국이 개별 사업 단위의 단절된 지원에 머무는 동안, 대만은 전시부터 물류, 데이터 축적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연속된 진입로'를 통해 중소기업의 안착을 돕는다. 이제는 기업에게 성공이라는 결과물만 독촉할 것이 아니라, 실패를 자산으로 바꾸고 반복 거래를 유도하는 '산업 단위의 프로세스 설계'로 수출 정책의 근간을 바꿔야 한다. (사진=벡스코)

 

 

한국에서 수출은 여전히 ‘성과’의 언어로 먼저 등장한다. 몇 개국 진출, 얼마 수출 계약 체결, 몇 만 달러 상담 실적과 같은 숫자가 사업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기업은 그 숫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전시회에 나가고 바이어를 만나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시장을 학습할 시간과 구조는 주어지지 않는다. 실험이 아니라 결과를 요구받는 구조에서는 실패가 곧 철수가 되고, 철수는 다시 해외 시장에 대한 두려움으로 남는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처음 해외에 나갈 때 겪는 과정은 비슷하다. 전시회 참가를 위해 부스를 신청하고, 샘플을 제작하고, 통역을 구하고, 현지 물류를 따로 알아보고, 바이어 명단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의 비용을 지불한다. 그러나 전시가 끝난 이후에는 이어지는 구조가 없다. 상담은 계약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계약이 되더라도 물류와 유통, 사후 관리 체계가 없어 단발성 거래로 끝난다. 한 번의 경험으로 시장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지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연결이 없다는 데 있다. 전시 지원, 물류 지원, 통번역 지원, 인증 지원이 각각의 사업으로 존재하지만, 이들이 하나의 시장 진입 과정으로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기업은 매 단계마다 새로운 사업을 찾아 신청해야 하고, 그 사이에서 시간과 기회를 잃는다. 시장은 연속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지는데 정책은 단절된 사업 단위로 작동한다.

 

◆ 해외 진출은 이벤트가 아니라 과정이다


대만의 구조와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해외 전시가 끝나면 바로 현지 쇼룸으로 이어지고, 쇼룸에서 나온 반응은 공동 데이터로 축적되며, 그 데이터는 다음 생산 계획과 가격 전략에 반영된다. 유통망은 개별 기업이 새로 찾는 것이 아니라 산업 단위로 이미 연결되어 있고, 소량 주문부터 시작해 반복 거래로 확장되는 경로가 만들어져 있다. 기업은 시장을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통로 위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시험한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제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시장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고, 실패를 감당할 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의 전시에서 계약이 나오지 않으면 시장이 없다고 판단하고 돌아오고, 같은 과정을 다른 기업이 다시 반복한다. 경험은 축적되지 않고 비용만 남는다.


이 구조는 대구·경북 산업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지역 산업이 가진 기술과 생산 역량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 가능한 수준에 올라와 있지만, 이를 지속적인 거래로 전환할 수 있는 현지 거점과 공동 유통 구조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이 단기 수출에 머무른다.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는 기록은 남지만, 시장 안에 ‘정착했다’는 기업은 많지 않다.


결국 해외 진출의 성패는 기업의 의지나 제품의 품질보다 시장 진입 구조가 얼마나 연속적으로 설계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다.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곳에서는 학습이 일어나지 않고, 학습이 없는 곳에서는 반복 가능한 성과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전시 지원이 아니라 전시 이후가 자동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상담이 거래로, 거래가 반복 주문으로, 반복 주문이 브랜드 형성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산업 단위로 만들어야 한다. 해외 진출은 이벤트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 과정을 설계하지 않으면 어떤 지원도 성과로 축적되지 않는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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