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률 숫자에 가려진 '멈춘 공장', 무너지는 산업 밀도
신산업 성패, '기업 수'가 아닌 '협력 구조' 설계에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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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 산업단지의 가동률 지표 뒤에는 설비가 멈춰 선 공장과 끊겨버린 물류의 적막함이 숨어 있다. 단순히 기업을 모아놓는 '입주 정책'만으로는 더 이상 지역 경제의 심장을 뛰게 할 수 없다. 이제는 물리적 공간을 채우는 '입주율'의 함정에서 벗어나, 기업들이 서로 거래하고 협력하며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이는 '산업 밀도'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대구·경북의 미래 산업 역시 개별 기업의 생존을 넘어, 대만의 사례처럼 촘촘한 공급망으로 엮인 '클러스터 설계'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사진=pexels) |
지방 산업단지를 직접 걸어보면 숫자로 발표되는 가동률과 현장에서 체감되는 온도 사이에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외형상 공장은 들어서 있고 간판도 걸려 있지만, 내부 설비가 멈춰 있거나 물류 차량의 움직임이 줄어든 곳이 적지 않다. 산업단지가 조성될 당시에는 지역 제조업의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개별 기업의 임대 공간처럼 기능하면서 산업으로서의 밀도는 오히려 낮아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기계, 금속, 섬유, 자동차 부품과 같은 기반 산업이 집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단지 전체가 하나의 생산 네트워크로 움직이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기업은 같은 단지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 거래하지 않고, 같은 업종이 모여 있으면서도 공동 프로젝트를 하지 않는다.
◆ 산업단지는 공간으로 만들어지지만 산업 클러스터는 거래 구조로 완성된다
공간은 모였지만 산업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 이것이 지금 산업단지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이다. 산업단지가 비어가는 이유를 단순히 경기 침체나 인구 감소로 설명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해석이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산업단지를 ‘입주 정책’으로 설계했다는 데 있다.
기업을 유치하면 산업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용지 공급, 세제 감면, 건축 지원과 같은 물리적 인프라 중심 정책이 반복됐지만, 기업 간 거래 구조를 만드는 설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같은 업종이 모여 있어도 공동 연구개발이 없고 공동 구매 시스템이 없으며 공동 수출 조직이 없다면 기업은 결국 각자 외부 시장으로 나가 개별 경쟁을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가격 협상력이 약한 기업부터 단지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즉 산업단지가 비어가는 것이 아니라 산업 구조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이 떠나는 것이다.
대만의 산업 집적지는 ‘공장 부지’가 아니라 ‘생산 네트워크’로 설계된다. 대표적으로 타이난 과학단지(Tainan Science Park)와 타이중 공작기계 클러스터(Taichung Machine Tool Cluster)를 보면 기업은 공간적으로 모여 있을 뿐 아니라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완제품 기업이 존재하고 그 주변에 부품 기업이 배치되며 공동 연구기관이 기술을 지원하고 수출 플랫폼이 시장을 연결한다. 이 구조에서는 기업이 단지를 떠날 이유가 없다. 단지 안에 있을수록 거래 비용이 줄어들고 기술 접근 속도가 빨라지며 해외 시장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대만은 산업단지를 조성할 때 입주 업종을 단순히 제한하는 수준이 아니라 공급망 단위로 설계한다. 생산 공정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기업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산업단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밀도가 높아지고, 개별 기업은 작아도 산업 전체는 글로벌 시장에서 완결된 경쟁력을 갖게 된다.
한국의 산업단지는 공간 중심으로 조성됐고 대만의 산업 클러스터는 거래 구조 중심으로 설계됐다. 한국은 기업이 들어오면 정책의 역할이 끝나지만 대만은 기업이 서로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때까지 설계를 멈추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같은 단지 안의 기업이 경쟁 관계가 되지만 대만에서는 같은 단지 안의 기업이 공급망의 일부가 된다. 이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크게 벌어진다. 한국의 산업단지는 노후화되지만 대만의 산업 클러스터는 고도화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단지를 새로 만드는 정책이 아니라 기존 산업단지를 산업 클러스터로 전환하는 전략이다. 기업 수를 늘릴 것인가, 기업 간 거래를 만들 것인가, 입주율을 높일 것인가, 산업 밀도를 높일 것인가, 대구·경북의 산업 정책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로봇, 미래차 부품, 헬스케어와 같은 신산업을 개별 기업 단위로 육성할 것인지, 아니면 공동 연구개발과 공동 수출 구조를 갖춘 클러스터로 설계할 것인지에 따라 지역 경제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산업단지는 공간으로 만들어지지만 산업 클러스터는 거래 구조로 완성된다.
● 정보 코너 – 참고 구조 타이중 공작기계 클러스터완제품 기업 중심 공급망형 집적 구조 타이난 과학단지 연구기관 + 생산기업 + 글로벌 기업 동시 배치 산업단지 고도화 정책(대만) 입주 지원 → 공동 연구개발 → 공동 수출 플랫폼 단계적 설계 |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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