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 농수성發 금메달’ 박성민 셰프 “최상의 맛 위해 타협 없이 정진”

인터뷰 / 성지온 / 2022-08-01 09: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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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경력 25년 차 셰프…올해 2월[일본요리기술인증] 최고 영예 수상
일본 정찬 요리‘가이세키(かいせき)’매력에 흠뻑…화려한 맛과 모양, 정성
20년 전 수사 의미 알고 충격…식자재, 고객 목숨 건 병사의 마음으로 수행

▲ 박성민 일식당 <타쿠미곤> 총괄 셰프는 지난 29일 목숨을 걸고 전투병의 마음으롱 음식을 조리하고 손님을 접대한다고 얘기했다. 박 셰프는 주방 가림막인 노렌을 젖히고 손님을 맞이하는 때부터 직업 의식이 아닌 사명감으로 손님에게 식사하시는 시간 만큼은 본인의 역량으로 편안한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성지온 기자>


“스시(すし)는 목숨을 맡는다는 뜻의 ‘수사(壽司)’라고도 한다. 어떤 목숨을 걸 것 인가란 고민 끝에 손님 접대 전 스스로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한다. 하나는 식자재로 재료 본연의 맛을 끌어내어 최대 효용을 냈나?라고 묻는다. 나머지 하나는 고객이다. 고객이 제 음식을 먹고 탈이 나지 않도록 도마 한 번, 손 한 번 더 씻고 위생에 빈틈이 없는지 확인한다. 매일 식자재와 손님 목숨이 걸린 전투에 임하는 병사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고 있다”


지난 29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일식당 <타쿠미곤>에서 만난 박성민 총괄 셰프는 ‘요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이냐’는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목숨을 맡다’란 문장은 한 손님으로부터 알게 된 지 20 여 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박 셰프를 긴장케 한다고 했다.

“2004~2005년 경 국내 굴지의 유명 제약사 회장님을 손님으로 모신 적이 있다. 회장님이 스시의 한문이 목숨 수, 맡을 사를 쓰는 거 아느냐고 물으셨다. 일본 요리를 만들면서 한문 뜻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었는데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날로 회장님이 써준 수사란 글씨는 코팅해서 제 방 벽 한 켠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후배들한테도 매번 목숨을 걸라고 얘기한다.”

실제로 이날 인터뷰 중, 그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한 순간은 요리 자체에 관해 설명할 때와 요리하는 사람의 자세 혹은 태도를 얘기할 때였다. 그는 재미있게 본 일본 드라마로 <오센>, <요리 삼대째>를 꼽았다. 특히, <오센>에서 식당 여주인이 ‘후로후키 다이콘(風呂吹き大根)’을 만드는 에피소드는 무릎을 칠 정도로 감탄했다고 설명했다.

“후로후키 다이콘이란 무를 육수에 삶은 뒤 미소 된장을 곁들인 요리다. 보통 연해진 무끼리 부딪치면 깨지니 미리 무 모서리를 깎아두는데 주인공은 이 과정을 생략한다. 끓이지 않고 약한 불로 서서히 익히면 부딪힐 일이 없기 때문이다. 육수를 많이 머금기에 맛도 더 좋다. 다만, 사람이 지나가면 꺼질 정도로 불 세기가 약하므로 일반적인 조리 시간의 배가 소요된다. 비록 드라미일 뿐이지만 여주인의 정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요리사가 가져야 할 자세와 태도란 저런 것이어야 한다고 무릎을 쳤을 정도”

“주방 가림막을 젖히고 손님을 맞을 때마다 다짐한다. 식사 시간 만큼은 편안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접객 하겠다는 사명감을 상기한다. 혹자는 손님들 앞에서 무게 잡고 건방을 떠는데 저는 틀렸다고 본다. 저를 가르친 일본 장인, 타쿠미곤 대표님도 손님과 형성하는 공감대를 중요하게 보았다. 이를 위해선 단순히 직업 의식이 아닌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박 셰프에게 ‘무조림’은 단순히 한 요리가 아니라 무를 손질하고, 맛있게 먹을 손님을 생각하며 뜨거운 불 앞에 하염없이 서 있을 수 있게끔 하는 정성, 태도, 노력 등을 함축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초밥 장인 고노 지로(小野二郞) 씨 역시 정성스러운 태도로 유명하다. 그는 여전히 참다랑어를 구울 적에 볏짚을 사용한다. 벼를 태워 나는 연기가 생선 비린내를 잡기 때문이다. 김도 화롯불에 연신 뒤집어가며 굽는다. 식감, 향, 광택 모두 고려했을 때 화롯불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모든 수고스러움을 감내해야 손님에게 최상의 맛을 대접할 수 있다는 장인의 고집인 셈이다.

그리고 박 셰프에게 무조림은 현재 ‘가이세키(かいせき)’가 아닐까. 가이세키란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 온 요리 중 하나로 다양한 음식을 작은 용기에 담아 순차적으로 먹는 정찬 요리다. 과거에는 간단히 먹는 검소한 요리였으나 최근 들어 연회용 고급 요리로 분류되고 있다.

가이세키는 우선 다양하고 화려한 외관에 의해 입과 눈이 사로잡히나 귀도 즐겁다. 코스별로 음식이 나올 때마다 셰프가 무슨 재료를, 어떻게 조리했고, 주제는 어떠하며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날 박 셰프는 가이세키 코스 중 하나로 식전 입맛을 돋게 하는 핫슨(八寸)을 보여줬다. 나무 바구니에는 크림치즈로 만든 하얀 매화꽃, 백앙금을 쒀 만든 초록색 뻐꾸기, 파스텔 색조의 달걀 탑, 윤기 나는 금귤(낑깡)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일본에서는 3월을 야요이(やよい)라고 부른다. 초목이 무성하고 모든 생명이 소생하는 달이란 의미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봄을 연상케 하는 매화, 뻐꾸기 등을 만들었다. 계절별 특성을 담기 위해 재료 선정부터 조리법, 주제, 장식 등을 생각해야 하는데 힘들다.”


▲ 지난 29일 박성민 셰프가 선보인 가이세키 요리 중 한 단계인 핫슨. 초목이 무성하고 모든 생명이 소생 하는 3월을 주제로 한 음식들이 눈길을 끈다. <사진=성지온 기자>

가이세키는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주제,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음식으로 태어난다. 고등학교 2학년, 우연히 본 예능에서 한 일본 명인이 광어를 해체하는 모습에 반해 일식 요리사 외길을 걸어온 박 셰프가 여전히 겸허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배움의 폭과 깊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일식 셰프 경력 25년 차지만 여전히 자신이 있는 메뉴는 이것이라고 감히 얘기하지 못한다. 저를 가르쳐주신 대표님들이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공부할 것이 아직 너무나 많다. 지금도 당장 일본으로 날아가서 장인에게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싶다. 지역별 식문화, 각 계절의 제철 채소, 생선 종류와 특징, 맛의 조화 등 배울 게 너무 많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 어느 때보다 크고 짙다.”

한편,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 덕에 박 셰프는 올해 1월 ‘일본요리연구회’의 한국 지부 회장으로 임명됐다. 일본요리연구회는 일본인 셰프로만 구성된 모임으로 일본 내에선 권위 있는 단체다. 그해 2월에는 일본 농림수산성이 주관하는 ‘일본요리 조리기능인정제도’에서 최고 영예인 금메달을 수여했다. 일본 정부는 2016년 4월부터 일본 요리에 대한 지식, 기능을 까다롭게 심사하여 해외 요리사를 인증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현재까지 해당 제도에서 금메달을 수여한 한국인은 5명 이하인 것으로 전해진다.

“금메달을 받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 준비하기보다 25년 간 꾸준히 일본 음식 곁에서 떠나지 않고 연구하고 요리한 일련의 발자취들이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가이세키 요리의 본토에서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보다 영광스럽고 기쁘다. 안주하지 않고 더욱 겸허하고 목숨을 거는 자세로 일식에 전념할 것”


▲ 지난 2월 박성민 셰프는 일본 농림수산부가 주관하는 일본 요리 기술 인정 제도에서 금메달을 수여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6년 4월부터 해당 제도를 운영, 일식과 관련된 지식을 비롯해 조리법, 기술 등을 평가하여 금, 은, 동메달을 발급하고 있다. 특히 금메달의 경우 최소 2년 이상 일본 현지에서 근무하며 일식을 배워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성지온 기자>

박 셰프의 최종 꿈은 한국에 일본 정통 숙박 시설인 료칸(ょかん)을 짓고 온천, 정통 가이세키 요리, 고품격 접객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공부한 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언젠가 한국에 료칸을 지어 최상의 정찬 요리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 생각이 들었다. 이를 위해 본토에서 함부로 짝퉁이라는 말을 할 수 없도록 타협하지 않고 정통 가이세키 요리에 매진하고 있다. 매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접대 하는 모든 행동들이 꿈을 이루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또한 한국에서 일본 요리가 스시에 한정적인 부분을 아쉬워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일본 요리라고 하면 대게 초밥 혹은 이자카야만을 떠올리는 게 아쉽다. 연회용 정찬 요리인 가이세키, 셰프가 불과 칼을 이용해 이리저리 요리를 만드는 갓포, 일품요리를 큰 쟁반에 담아두는 고료리야, 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로바타야 등 다양한 일본 요리가 있다. 식재료 수급 등 한계가 있으나 빠른 시일 내 한국에도 다양한 식문화가 발전할 거라고 본다. 그날이 올 때까지 제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소상공인포커스 / 성지온 기자 anarangz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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