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으로] 추억이 되어가는 골목 빵집

지역/소상공인 / 노가연 기자 / 2022-09-07 01: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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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심 없어 설 땅 잃어가는 개인 제과점들
▲ 대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 밀려 입지를 잃은 동네 빵집들은 한 동네서 오랜 시간 자리를 굳혀온 유서 깊은 제과점이나 빵맛이 월등히 뛰어나 충성 단골층을 확보한 베이커리가 아니라면 생존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사진=노가연 기자)

 

먹거리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던 시절, 달콤한 밀가루 빵은 한 때 최고의 간식이었다. 혀가 빵에 인색한 사람도 갓 구운 냄새에는 구미가 동하곤 한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빵 역시 사람들의 입맛 따라 기호 따라 다양한 변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의 힘이 뒷받침 되지 못한 작은 제과점의 옛적 빵맛은 그다지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퇴근길의 출출한 배를 가장 빠르게 달랠 수 있는 먹거리로 빵만 한 것이 또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빵 봉지를 들고 귀가하는 퇴근길, 손에 든 빵 봉지 모양은 거의 비슷하거나 한결 같을 때가 많다. 간혹 거리에서 케익상자를 들고 가는 사람들의 손에도 같은 상표가 많다.


식빵 질감 하나, 크로와상의 버터향 농도까지 따지는 빵 마니아가 아닌 이상, 빵을 사러가는 일반인의 발걸음은 깔끔하고 출입이 쉬운 대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로 향하기 마련이다. 대로변에서 한눈에 봐도 눈에 띄는 간판을 달고 밝은 조명 아래 갖은 종류의 먹음직스런 빵이 진열된 매장은 자연스레 손님들을 유인한다. 반면, 한 동네서 오랜 시간 자리를 굳혀온 유서 깊은 제과점이나 빵맛이 월등히 뛰어나 충성 단골층을 확보한 베이커리가 아니라면 동네 제과점은 차츰 발길이 뜸해진다.

 

▲ 소보루와 단팥빵도 훌륭한 간식이었고 피자빵은 쉽게 집기 힘들었던 예전, 빵은 의례히 개인 제빵사가 직접 반죽하고 굽는 윈도우 베이커리에서 탄생했다. 찹쌀 도넛, 카스테라, 만쥬, 고로케, 버터크림과 슈크림 빵, 앙금빵 등이 지금 유행하는 제품들이 출시되기 전 주로 즐겨먹던 빵들이다.(사진=노가연 기자) 


대형 제과업체들의 약진에 밀려난 개인 제과점
소보루와 단팥빵도 훌륭한 간식이었고 피자빵은 쉽게 집기 힘들었던 예전, 빵은 의례히 개인 제빵사가 직접 반죽하고 굽는 윈도우 베이커리에서 탄생했다. 찹쌀 도넛, 카스테라, 만쥬, 고로케, 버터크림과 슈크림 빵, 앙금빵 등이 지금 유행하는 제품들이 출시되기 전 주로 즐겨먹던 빵들이다. 특별한 날 선물로 들어온 롤케익이나 생일날 먹는 케익은 얼마나 입에서 살살 녹던지, 지금처럼 생크림도 아닌 느끼한 버터크림이었음에도 싹싹 긁어먹을 만큼 빵은 고급간식이었다.


주로 ‘동네 빵집’이 수요를 충족시키던 베이커리 시장에 변화가 인 것은 1990년대 개인주도 체인점들과 기업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업체가 생겨나면서부터다. 제과업계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IMF를 기점으로 시장 전반적인 구도에 눈에 띄는 흐름이 형성됐다. 고려당이나 뉴욕제과 같은 중소규모 체인점들과 자금난으로 운영이 어려워진 개인제과점이 줄줄이 문을 닫자 파리바게트를 대표주자로 한 대형업체들이 급속도로 영역을 확장시킨 것이다.


2005년 무렵 개인 제과점과 프랜차이즈 시장 점유율은 각각 37%, 35%로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고 이후 자영업체들은 더욱 감소하는 반면 프랜차이즈업체들은 점포수를 늘리며 고속 성장했다.

 

▲ 빵 종류도 버터와 계란, 크림 첨가가 많고, 튀긴 도넛종류가 주류였던 개인 제과점과는 달리 프랜차이즈 업체는 웰빙의 도래와 함께 빵의 본고장인 유럽식의 풍미와 질감을 살린 제품들을 대거 출시했다.(사진=노가연 기자) 


빵 종류도 달라졌다. 버터와 계란, 크림 첨가가 많고, 튀긴 도넛종류가 주류였던 개인 제과점과는 달리 프랜차이즈 업체는 웰빙의 도래와 함께 빵의 본고장인 유럽식의 풍미와 질감을 살린 제품들을 대거 출시했다. 바게트를 비롯한 크로와상, 페스츄리, 통밀 느낌을 살린 호밀·곡물빵 등 위에 부담이 적고 담백한 빵들과, 치즈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에 이르기까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빵들이 진열대를 점령하고 있다. 파리바게트 매장에서 옛날 그 빵맛의 추억에 잠기기란 쉽지 않다.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제품 개발과 좋은 입지 조건, 브랜드 자체가 홍보인 높은 인지도 등 변화의 흐름을 잘 따르고 또 주도했던 대형 업체들이 자영 제과점을 추월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반면 기술 개발이나 마케팅, 인테리어, 서비스, 위생 등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개인 제과점들은 자의건 타의건 점점 입지를 잃어 왔다.

 

▲ 개인 제과점을 운영 중인 박 씨는 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도 그렇지만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시장골목의 음식점들과 저렴한 시장 빵집이 더 큰 어려움이라고 말했다.(사진=노가연 기자) 


‘동네 빵집’ 다른 음식점과도 경쟁 과열
소규모 개인 제과점은 빵 반죽부터 판매까지 거의 제빵사 겸 주인인 사장에 의해 직접 이뤄진다. 오븐이 놓인 작은 주방과 손님 두 명 정도면 꽉 차는 내부, 문 앞 가판대의 단순한 구조의 공간에서 빵을 굽고 있는 사당동의 박 모씨도 부인과 둘이서 10년 넘게 작은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좀 더 넓었던 이전 점포에서 옮겨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래전의 빵맛에 잠기기에 제격인 분위기지만 사실, 선뜻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던 작고 허름한 가게다.


그들의 일과는 단순하다. 아침 7시 20분부터 빵을 굽기 시작해 밤 12시에 가게 문을 닫는다. 박 씨는 제빵일은 노동중의 상노동이고 기본 빵을 굽고 운영하기에도 급급해 새로운 제품 개발 같은 데에는 시간을 낼 수가 없다고 했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내용의 이런저런 대화 도중 그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도 그렇지만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시장골목의 음식점들과 저렴한 시장 빵집이 더 큰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1,000원에 3개씩 파는 빵집과 경쟁하려면 우리도 가격을 낮춰야 하는데, 재료는 우리 것이 더 좋아요. 주변에 만두가게, 도너츠 가게, 피자점 등이 계속 생겨서 더 걱정이죠. 회사 다니던 사람들이 마땅히 할 게 없으니까 자꾸 음식점을 차리는 것 같습니다. 가스비, 전기료, 재료값은 계속 오르고 요즘은 ‘돈 번다’는 말을 할 수 없네요.” 동네 빵집들은 대형 업체들과의 경쟁뿐 아니라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수많은 다른 업종들과의 경쟁에도 힘겹게 맞서고 있는 중이다.


보기 좋은 인테리어, 일본이나 프랑스 등지에서 배워온 기술로 만든 혁신적인 신제품, 통신업체 카드 할인 등이 손님들을 끌어 모으리란 것을 박 씨인들 모를 리가 없지만 이를 모두 극복할 입지전적인 경영을 해 나가기에는 박 씨는 너무도 순박해보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개인기가 대형자본의 힘에 대항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룰이 제과업계라고 비껴날 리 없는 현실 속에서 ‘동네 빵집’은 ‘사라져 가는 것’들의 대열에 점점 더 빠르게 합류하는 듯하다.

 

소상공인포커스 / 노가연 기자 ngy90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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