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임상은 왜 실패보다 탈락이 더 많은가

소상공인 심층/기획 / 서영현 기자 / 2025-09-15 10: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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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로 설계된 산업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살아남은 약물 뒤에 숨겨진 수천 개의 이름들, 축적된 실패가 승인을 만든다
▲ 바이오 산업의 임상 시험은 성공을 향한 직선적 경로가 아니라, 수많은 후보 물질 중 극소수만을 남기는 정교하고 냉혹한 '단계별 선별 시스템'이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단과 탈락은 실패가 아닌 데이터의 축적 과정이다. 초기 연구의 화려한 기대와 달리 임상 후반부로 갈수록 통과 확률은 급격히 낮아지며, 이러한 '좁아지는 깔때기' 구조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시장의 불필요한 변동성을 줄이고 진정한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이다.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입니다.(사진=pexels)

 

바이오 산업에서 임상 실패는 종종 예외적인 사건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실제 구조는 그와 정반대 방향에서 작동한다. 연구개발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대부분의 후보 물질은 최종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로 위에 놓이며 임상 단계는 가능성을 확대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좁혀가는 선별 구조로 기능한다. 따라서 임상에서 나타나는 결과는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이해하기보다 어떤 기준이 통과되고 어떤 조건이 제외되는지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초기 연구 단계에서는 수많은 후보 물질이 동시에 출발한다. 실험실 환경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효능이 확인되더라도 실제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과정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생체 환경은 실험 조건과 달리 통제되지 않은 변수로 가득 차 있으며 환자군의 특성에 따라 동일한 물질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후보는 다음 단계로 이동하지 못하고 연구는 계속해서 축소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 비용은 기하급수, 확률은 한 자릿수... 바이오 자본이 감당해야 할 선별의 무게


국내 사례를 보면 이러한 구조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여러 바이오 기업들이 임상 2상 또는 3상 단계에서 개발을 중단한 경험을 반복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초기 단계에서는 유의미한 데이터가 확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군이 확대되면서 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지되지 않거나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확인되는 경우가 나타난다. 일부 기업은 수년간 축적한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임상 후반 단계까지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프로젝트를 종료하기도 한다. 연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통과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 결과다.


해외에서도 동일한 흐름이 반복된다. 미국에서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임상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며 특정 항암제 개발 과정에서는 초기 단계에서 높은 기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임상 3상에서 목표로 설정된 생존율 개선을 입증하지 못해 개발이 종료되기도 했다. 이 사례는 기술 수준이나 투자 규모와 관계없이 임상 단계에서 탈락이 발생하는 구조가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본의 경우에도 장기간 연구개발을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임상 단계에서 중단되면서 기업이 방향을 수정하는 사례가 나타나지만 이러한 과정이 외부에 크게 노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부에서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진 이후에야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탈락 자체가 시장 변동으로 이어지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확률 구조는 동일하지만 그 결과가 드러나는 방식은 국가별로 차이를 보인다.


임상 구조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탈락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사례 역시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제약사의 면역항암제 개발 과정에서는 초기 수십 개 이상의 후보 물질이 동시에 연구되었지만 실제 임상 후반 단계까지 진입한 후보는 극히 제한적이었고 그 가운데 최종 승인까지 도달한 약물은 더욱 소수에 불과했다. 성공으로 기록되는 결과 뒤에는 다수의 중단된 연구가 존재하며 그 축적이 최종 결과를 가능하게 만든다.


국내에서도 일부 기업은 장기간 임상 데이터를 축적한 이후 특정 적응증에 집중하면서 제한된 환자군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술이전이나 상업화 단계로 이동하기도 한다. 초기에는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되던 연구가 임상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축소되고 특정 조건에 집중되면서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는 구조가 형성된다. 살아남는 경로는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좁아진다.


확률 구조를 수치로 보면 이 흐름은 더욱 분명해진다. 초기 후보 물질 가운데 임상 1상에 진입하는 비율 자체가 제한적이며 임상 2상과 3상을 통과하는 비율은 단계별로 급격히 감소한다. 최종 승인 단계까지 도달하는 비율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며 특정 분야에서는 한 자릿수 비율이 일반적으로 관찰된다. 이 수치는 기술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선별 구조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는 자본과 결합되는 순간 더욱 복잡한 형태로 나타난다. 임상 단계로 이동할수록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통과 확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에 기업은 낮은 확률을 통과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투자자는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탈락을 감수해야 하며 하나의 성공이 만들어지기까지 다수의 중단된 프로젝트가 누적되는 구조를 받아들여야 한다. 성공은 단일 사건이지만 탈락은 축적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성공 사례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탈락의 데이터다. 임상에서 중단된 프로젝트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연구의 기준으로 남는다. 어떤 조건에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는지, 어떤 환자군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가 축적되면서 이후 연구의 방향이 결정된다. 탈락은 실패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이며 그 선택이 반복되면서 산업의 경로가 만들어진다.


한국에서는 이 확률 구조가 시장의 기대와 직접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 단계에서 기술이 공개되면 성공 가능성이 강조되며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지만 임상 과정에서 탈락이 발생하면 평가가 급격히 조정된다. 기대는 직선적으로 상승하는 반면 실제 결과는 단계별 선별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나기 때문에 이 간격이 반복되며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된다. 실패로 인식되는 사건의 상당수는 구조적으로 예정된 탈락이다.


결국 임상은 성공을 향해 가는 단순한 경로가 아니라 탈락을 반복하면서 점차 좁아지는 선택 과정이다. 수많은 후보가 출발하지만 대부분은 중간 단계에서 멈추고 일부만 다음 단계로 이동하며 그 과정에서 남는 것은 개별 기술이 아니라 기준이다. 어떤 조건이 통과되고 어떤 조건이 제외되는지가 축적되면서 산업은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임상에서 중요한 것은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탈락이 발생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 탈락이 반복적으로 축적되면서 다음 연구의 방향이 정교해지고 결국 하나의 성공이 만들어진다. 임상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기준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가깝다.
 

 

소상공인포커스 / 서영현 기자 93oliv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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