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반영된 기대와 지연되는 임상...
한국 바이오 시장의 변동성이 반복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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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오 산업의 성패는 단순한 기술력을 넘어 '기다림의 시간'을 설계하고 견뎌내는 구조적 역량에 달려 있다. 기대가 앞서고 결과가 뒤처지는 한국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 기술 축적을 우선시하는 일본이나 네트워크로 리스크를 분산하는 대만의 사례처럼 '시간의 경로'를 새롭게 설계해야 함을 제안한다.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입니다.(사진=벡스코) |
바이오 산업을 바라볼 때 시장은 늘 속도를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새로운 치료 기술이 등장하면 곧바로 상업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고 기업 가치 역시 그 기대를 선반영하며 빠르게 움직인다. 그러나 실제 산업의 흐름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전개된다. 연구 성과가 발표되는 시점과 시장에서 의미 있는 매출이 발생하는 시점 사이에는 긴 간격이 존재하며 그 간격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산업 자체를 구성하는 핵심 구조로 작동한다. 기술은 등장하는 순간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결과는 오랜 시간 이후에야 확인된다.
연구개발 과정은 단일한 흐름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분리된 시간 구조 위에서 진행된다. 초기 단계에서는 안전성을 중심으로 검증이 이루어지고 이후 단계에서는 효과를 확인하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결과를 확정한다. 각 단계는 독립된 판단 기준과 시간을 가지며 이전 단계의 결과에 따라 다음 단계가 결정된다. 한 번의 실패나 변수로 인해 일정이 다시 설계되기도 하고 추가적인 데이터 확보를 위해 시간이 연장되기도 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시간 경과가 아니라 반복과 재구성을 포함하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연구개발의 시작 시점과 시장 진입 시점 사이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시간 축이 형성된다.
◆ 대만의 네트워크 전략, 한 기업의 고군분투 대신 ‘시간을 분산하는 협업’
한국에서는 이 시간 구조가 시장 기대와 자주 충돌한다. 기술이 공개되는 순간 기업 가치는 빠르게 반응하고 투자 역시 초기 단계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기대는 선행하지만 결과는 뒤따르기 때문에 간극이 점차 확대된다. 임상 진행 과정에서 일정이 지연되거나 데이터가 예상과 다르게 나오면 시장은 다시 평가를 조정한다. 기술은 존재하지만 결과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가 반복되면서 산업 전반에 불안정성이 축적된다. 속도를 기준으로 판단이 이루어지는 환경에서는 시간의 구조가 왜곡되어 보일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동일한 연구개발이라도 전혀 다른 흐름이 형성된다. 기술이 외부로 공개되기 전에 내부에서 오랜 기간 축적되는 과정이 먼저 존재한다. 기업은 연구개발 단계에서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고 시행착오를 내부에서 소화한 이후에야 시장과 접촉한다. 기대가 형성되는 시점이 늦어지는 대신 결과의 불확실성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같은 연구개발이라도 시간의 배열이 다르게 구성되면서 산업의 체감 속도 역시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기대가 먼저 움직이고 결과가 뒤따르는 흐름이 나타나지만 일본에서는 결과가 축적된 이후 시장이 이를 따라간다.
대만은 또 다른 방식으로 시간 문제를 다룬다. 특정 기업이 모든 과정을 수행하기보다 단계별로 역할을 분리하고 필요한 시점에 외부 파트너와 연결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연구개발, 임상, 생산, 사업화가 하나의 기업 안에서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네트워크 안에서 동시에 진행되며 시간은 한 지점에 집중되지 않는다. 이 구조에서는 동일한 기간이라도 체감되는 속도가 달라진다. 시간이 축적되는 방식이 아니라 분산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투자 구조 역시 이 차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바이오 기업은 매출이 발생하기 전까지 장기간 자금이 투입되는 특성을 가진다. 연구개발 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지만 수익은 일정 시점 이후에야 발생한다. 한국에서는 이 간격을 외부 자금으로 메우는 방식이 일반적이며 자금이 먼저 유입되고 결과가 뒤따르는 구조가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기대가 반복적으로 조정되며 기업 가치는 큰 변동을 경험하게 된다. 시간의 간격이 투자 리스크로 전환되는 구조다.
일본에서는 내부 자금과 장기 투자 기반이 시간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외부 평가보다 내부 축적이 우선되며 연구개발 기간 동안 방향성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속도는 느리지만 흐름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대만에서는 투자 역시 네트워크 구조 안에서 연결된다. 특정 단계에서 필요한 자금이 공급되고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전체 과정이 이어진다. 시간의 부담이 한 기업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주체로 분산된다.
기술이전 과정에서도 동일한 패턴이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기술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빠르게 외부 파트너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지만 상대 기업은 임상 데이터와 검증 결과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시간의 기준이 서로 다르면 협상은 쉽게 맞춰지지 않는다. 기술은 준비되어 있지만 상대가 요구하는 시간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가 형성된다. 이 간극은 단순한 협상 문제가 아니라 시간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일본 기업은 내부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친 이후에야 협상에 진입한다. 시간의 축적 자체가 거래 조건으로 작용하며 결과의 신뢰도가 협상의 중심이 된다. 대만 기업은 특정 단계에서 필요한 파트너를 미리 연결해 두고 그 흐름 안에서 기술이 이동한다. 협력 구조가 시간 문제를 완화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기술이전 역시 단절 없이 이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된다. 바이오 산업에서 경쟁은 기술의 우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구조가 시간을 견딜 수 있는지를 두고 경쟁이 이루어진다. 연구개발, 투자, 협력, 시장 진입까지 모든 과정이 시간 위에서 배열되며 그 배열 방식에 따라 결과의 도착 시점이 달라진다. 기술은 출발점이지만 시간은 경로를 만든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대는 항상 앞서 움직이고 결과는 뒤에서 따라온다. 이 간격이 유지되는 한 산업은 동일한 흐름을 반복하게 된다. 기술이 발전해도 시간의 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결과 역시 같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시장이 기술을 중심으로 산업을 바라보는 순간 시간의 흐름은 가려지고 판단은 반복적으로 흔들린다.
기술은 언제나 먼저 등장한다. 그러나 산업은 기술을 따라가지 않는다. 임상은 기다림을 요구하고 자금은 시간을 소비하며 협력은 타이밍을 선택한다. 같은 연구개발이라도 어떤 구조 위에 놓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도착하는 시점은 완전히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기대가 먼저 움직이고 시간이 뒤따르지만 일본에서는 시간이 먼저 축적되고 시장이 뒤늦게 반응한다. 대만에서는 시간이 한 기업 안에 머무르지 않고 네트워크로 분산되면서 흐름 자체가 달라진다.
이 차이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시간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기술의 운명이 결정된다. 기술이 늦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다르게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산업은 같은 기대와 같은 결과를 반복하게 된다.
소상공인포커스 / 노금종 기자 nkj1966@ilyo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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