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을 관리할 것인가, 산업을 이동시킬 것인가
![]() |
| ▲ 정부의 중소기업 예산 정책이 연도별 회계 정산과 단기 지표 관리에 매몰되어 기업을 단 한 칸도 이동시키지 못하는 사이, 대만은 집행 과정을 산업 데이터의 축적과 전략 수정의 기회로 삼아 가치사슬의 고점을 선점하고 있다. 이제는 예산을 '소진'하는 행정 국가를 넘어, 산업의 좌표를 실질적으로 '이동'시키는 설계 국가로의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사진=중소기업정책자금종합센터) |
산업 정책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산을 떠올린다. 지원 규모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은 가장 손쉬운 설명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산이 투입되었음에도 산업 구조가 달라지지 않는 사례가 반복된다.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집행의 방향성에 있다.
예산은 자원이다. 그러나 자원은 목표가 분명할 때만 힘을 가진다. 목표가 산업 단위로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이 배정되면 집행은 행정 절차로 귀결되고, 성과는 단기 지표로 측정된다. 그 결과 산업의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한국의 집행 구조는 대체로 사업 단위로 작동한다. 사업은 공모되고 기업은 신청하며 선정과 집행이 이루어진다. 보고서와 정산 절차는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묻지 않는 질문이 있다. 이 집행이 산업 단위에서 어떤 구조 변화를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이다.
집행은 완료되지만 구조는 유지된다. 기업은 지원을 받았지만 시장에서의 위치는 그대로다. 기술은 개선되었지만 가격 협상력은 변하지 않는다. 지원은 있었으나 이동은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가. 집행은 연도 단위로 설계되기 때문이다. 예산은 회계 구조에 따라 매년 편성되고 매년 평가된다. 그러나 산업은 회계 단위로 움직이지 않는다. 산업은 시간 단위로 이동한다. 최소 수년의 전략 축적이 필요하다. 이 시간 구조의 불일치가 문제의 핵심이다.
◆ 예산을 관리하는 국가와 산업을 이동시키는 국가는 다른 구조를 가진다
단년도 집행 구조에서는 장기 전략이 약화된다. 담당자는 연도 성과를 관리해야 하고, 기관은 집행률을 맞춰야 하며, 평가는 단기 지표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구조 전환은 다음 해로 미뤄진다. 또 다른 문제는 집행의 분절이다. 부처별로 설계된 사업은 각각의 목적을 갖지만 산업 단위에서 통합적으로 조정되지 않는다. 기술 지원 사업과 수출 지원 사업, 인력 지원 사업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병렬적으로 운영된다. 결과적으로 예산은 투입되지만 힘은 분산된다.
대만은 집행을 다르게 본다. 집행은 종료가 아니라 축적의 과정이다. 실행 기관은 집행 과정에서 산업 데이터를 수집하고 기업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하며 시장 반응을 기록한다. 집행은 다음 전략의 기초 자료를 만드는 과정이 된다. 예산은 단기 지출이 아니라 장기 설계의 일부로 작동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정 메커니즘이다. 대만은 집행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전략을 조정한다. 특정 산업군이 가격 경쟁에서 밀리면 단순 지원 확대가 아니라 가치 사슬 내 위치 조정을 논의한다. 집행 결과는 다음 설계의 출발점이 된다.
한국의 집행 구조에서는 수정이 쉽지 않다. 사업은 종료되고 다음 사업이 시작된다. 그러나 구조는 그대로다. 실패는 평가에서 지적되지만 설계 변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예산은 조정되지만 좌표는 유지된다. 이 반복이 누적되면서 정책은 체감되지 않는 지원으로 인식된다.
예산이 성과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예산이 많아서도 적어서도 아니다. 집행이 산업 좌표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좌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집행은 단기 성과로 귀결되고, 장기 전략은 약화된다.
산업은 생산 능력만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위치와 연결 구조에 따라 이익률이 달라진다. 예산이 그 위치를 바꾸는 데 쓰이지 않는다면 구조는 유지된다. 집행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집행은 행정 절차로 끝난다. 목표가 산업 단위로 설정되면 집행은 이동의 도구가 된다.
우리는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산업을 이동시키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행정 논쟁이 아니다. 산업 전략의 본질을 묻는 질문이다. 산업이 이동하지 않는다면 집행은 성공이 아니다. 집행은 성과표를 채울 수 있지만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반복일 뿐이다. 결국 집행 중심 국가와 설계 중심 국가는 이 지점에서 갈린다. 예산을 관리하는 국가와 산업을 이동시키는 국가는 다른 구조를 가진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전하는 언론 소상공인포커스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biz1966@naver.com
[저작권자ⓒ 소상공인포커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