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 기업은 어디에서 멈추는가

소상공인 심층/기획 / 노금종 기자 / 2026-02-19 16:5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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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사다리’ 끊긴 한국 산업… 스케일업 구간서 멈춘다
대만은 이어지고 한국은 끊긴다…성장 경로의 차이
▲ 한국 경제는 중소기업은 많지만 중견기업이 부족한 ‘성장 단절 구조’를 보이고 있다. 창업 이후 일정 규모에서 기업 성장이 멈추는 현상이 반복되며, 산업 전반의 확장성과 경쟁력을 제약하고 있다는 분석이다.(사진=소상공인포커스 DB)

 

한국 경제를 보면 한 가지 특징적인 구조가 나타난다. 중소기업은 매우 많지만 중견기업은 상대적으로 적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는 상당한 간격이 존재한다. 많은 기업이 창업 이후 일정 규모까지는 성장한다. 매출이 늘어나고 직원 수도 증가하며 기업 조직도 어느 정도 안정된다. 그러나 그 이후 단계에서 성장이 멈추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계속 존재하지만 규모는 크게 확대되지 않는다.


이 현상은 특정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조업, 서비스업, 기술 산업 등 다양한 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다. 한국 산업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정 규모 이후 기업 성장이 멈추는 구간이 존재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종종 성장 사다리의 단절로 설명한다. 기업이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가 충분하지 않을 때 기업은 일정 규모에서 멈추게 된다.

 

◆ “기업은 왜 멈추는가”… 산업 구조가 답을 쥐고 있다


기업의 성장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창업 이후 기업은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며 조직을 확장해야 한다. 작은 기업에서 중간 규모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기업의 운영 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처음 창업 단계에서는 기술과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그러나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려면 생산 관리, 조직 운영, 시장 전략, 자금 관리 등 다양한 요소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기업이 커질수록 경영의 복잡성도 크게 증가한다.

 

▲ 기업 성장은 창업 이후 단계에서 결정되고 성장 사다리가 약하면 기업 규모 확대가 어렵다. (사진 = 소상공인포커스 DB)
특히 기업이 스케일업(scale up) 단계에 들어가면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변화의 속도는 훨씬 빨라진다. 생산 규모를 확대하려면 설비 투자가 필요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면 영업 조직이 필요하다. 동시에 기업 내부의 조직 체계도 정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요구한다. 기업이 중간 규모로 성장하는 단계는 창업 단계보다 훨씬 복잡하고 위험한 구간이다.


한국 산업 구조에서는 바로 이 단계에서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다. 창업 기업은 꾸준히 등장하지만 일정 규모 이후에는 성장 속도가 급격히 둔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첫 번째는 시장 구조다. 많은 중소기업이 국내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시장은 규모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성장에는 자연스럽게 한계가 생긴다. 기업이 더 큰 규모로 성장하려면 해외 시장으로 진출해야 하지만 글로벌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다.


두 번째는 투자 구조다. 기업이 생산 규모를 확대하려면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 투자, 시장 확대를 위한 투자까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이러한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투자 시장 역시 빠른 성과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 기업이나 플랫폼 기업과 달리 제조업 기반 기업은 성장에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 구조가 투자 시장과 맞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 번째는 조직 구조다.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조직 운영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창업 초기에는 창업자의 개인 역량과 소규모 조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그러나 기업 규모가 커지면 전문 인력과 체계적인 조직이 필요해진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새로운 경영 능력을 요구받는다. 많은 기업이 이 조직 전환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다른 나라 산업 구조에서는 이러한 성장 구간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독일의 중견기업 구조는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에는 특정 기술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중견기업이 많다. 이 기업들은 중소기업에서 출발해 점진적으로 규모를 확대하며 산업 핵심 기업으로 성장했다.

 

▲ 기업의 성장은 결국 산업 구조가 얼마나 건강한 성장 경로를 가지고 있는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사진 = 소상공인포커스 DB)

독일 산업 구조에서는 이러한 기업을 미텔슈탄트(Mittelstand)라고 부른다. 이 기업들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특정 기술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대만 역시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만 산업에서는 중소기업이 특정 기술 분야에 집중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다. 기업은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세계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이러한 산업 구조에서는 기업의 성장 사다리가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작은 기업이 중간 규모 기업으로 성장하고 그 중 일부가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한다. 한국 산업 구조에서는 이 성장 사다리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창업은 활발하지만 기업이 중간 규모로 성장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그 결과 산업 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심으로 양극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기업은 왜 성장하지 못하는가가 아니라 기업은 어디에서 멈추는가다. 기업이 멈추는 지점을 이해해야 산업 구조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기업의 성장은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산업 구조 속에서 성장 사다리가 존재할 때 기업은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다.


산업이 기업에게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할 때 기업은 규모를 확대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기업의 성장은 결국 산업 구조가 얼마나 건강한 성장 경로를 가지고 있는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기업 성장은 창업 이후 단계에서 결정되고 성장 사다리가 약하면 기업 규모 확대가 어렵다. 산업 구조가 성장 경로를 만들 때 기업은 다음 단계로 이동할수 있다.

 

 

소상공인포커스 / 노금종 기자 nkj1966@ilyo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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