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전략] 창업은 왜 산업으로 연결되지 않는가

소상공인 심층/기획 / 노금종 기자 / 2025-02-21 14: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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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늘었지만 산업은 그대로… ‘성장 경로 부재’ 구조적 한계
창업 정책, ‘탄생’에 집중…‘산업 편입’ 설계는 부족
▲ 창업 지원은 확대되고 있지만 산업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는 이유는 ‘창업 이후’의 경로가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수를 늘리는 정책을 넘어, 창업 기업이 산업 공급망과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구조적 연결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사진=소상공인포커스 DB)

 

한국에서도 창업 정책은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창업 교육 프로그램이 늘어났고 창업 자금 지원도 확대되었으며 다양한 창업 지원 기관이 만들어졌다.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까지 창업 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창업 생태계의 규모 자체는 상당히 커졌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창업 기업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왜 산업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가. 새로운 기업은 등장하지만 그 기업이 산업의 핵심 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창업은 활발하지만 산업의 판도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이 문제는 창업자의 능력이나 아이디어의 문제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창업 기업이 산업 구조 속으로 들어가는 경로가 충분히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창업 정책은 대부분 초기 단계에 집중되어 있다. 창업 교육을 제공하고 초기 자금을 지원하며 창업 공간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러한 지원은 기업이 탄생하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 대만은 산업 연결, 한국은 초기 지원… 정책 구조의 차이


그러나 기업이 실제 산업 구조 속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시장에 진입하고 산업 공급망에 들어가며 투자와 인력을 확보해 규모를 확대하는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정책적으로 충분히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창업 기업이 초기 단계에서는 다양한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일정 규모에 도달하면 정책의 지원 범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시점부터 기업은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산업 공급망에 들어가지 못하면 성장 속도는 빠르게 둔화된다.


대만의 산업 정책은 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대만은 창업을 단순히 새로운 기업을 만드는 정책으로 보지 않는다. 창업 기업이 산업 구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경로를 동시에 설계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만의 신주 과학단지(Hsinchu Science Park)다. 이 지역에는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TSMC를 중심으로 장비 기업, 소재 기업, 기술 기업이 함께 모여 있다. 창업 기업은 이 산업 네트워크 안에서 기술 공급 기업이나 협력 기업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 구조에서는 창업 기업이 산업 공급망 속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창업 기업은 단독 기업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구성 요소로 자리 잡는다. 또 하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대만은 창업 정책에서 단기적인 성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산업이 성장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인정한다.

 

창업자는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탐색한다. 그러나 산업 환경이 지나치게 단기 성과를 요구하면 창업자는 장기적인 기술 개발이나 산업 혁신에 집중하기 어렵다. 대만의 산업 정책은 창업자에게 일정한 시간과 안정적인 산업 환경을 제공한다. 산업 생태계 안에서 기술을 축적하고 시장을 탐색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은 창업자에게 중요한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창업자는 단기 성과에 쫓기기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유지할 수 있다. 산업 정책이 창업자에게 단순한 지원금이 아니라 산업의 방향과 가능성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한국 창업 정책은 빠르게 성과를 확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창업 기업 수, 투자 규모, 고용 숫자 같은 지표가 정책 평가의 중심이 된다. 이러한 방식에서는 창업 기업이 산업 구조 속으로 자리 잡기 전에 성과 압박을 받게 된다.


창업 정책의 핵심은 기업 숫자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 기업이 산업 구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경로를 만드는 것이다. 창업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고 산업 공급망 안에서 역할을 찾을 수 있을 때 창업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산업 혁신의 출발점이 된다. 대만이 보여 준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창업을 장려하는 정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이 산업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창업자가 꿈과 비전을 유지할 수 있는 산업 환경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가 산업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창업 정책의 핵심은 기업 숫자가 아니다.창업 기업이 산업 구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경로가 중요하다. 창업이 산업으로 연결될 때 산업 경쟁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 창업이 산업으로 연결되기 위한 조건

1.산업 공급망과의 연결
2.시장 진입 경로 확보
3.장기적 기술 개발 환경

 

 

소상공인포커스 / 노금종 기자 nkj1966@ilyo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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