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분석] 한국 산업 경쟁력의 본질은 구조… 지원에서 설계로 정책 전환해야

소상공인 이슈&분석 / 김경훈 대기자 / 2026-03-19 14: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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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대만은 ‘산업 설계’, 한국은 ‘기업 지원’… 격차의 이유
클러스터·인프라·네트워크…산업 경쟁력은 구조에서 나온다
▲ 한국 산업 경쟁력의 한계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을 바라보는 정책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지원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산업 생태계 전반을 설계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5일 장성 남면에서 열린 전남 1호 데이터센터 장성 파인데이터센터 착공식 모습이다.(사진 = 전남도)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 산업 구조의 여러 문제를 이야기해 왔다. 중소기업의 수출 구조, 산업 클러스터의 한계, 정책 전달 구조의 단절, 성장 경로의 부재, 그리고 국가 전략의 부족까지 다양한 주제가 반복해서 등장했다. 각각의 문제는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구조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그 구조의 핵심은 산업을 바라보는 정책의 관점이다.


한국 산업 정책은 오랫동안 기업 지원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자금 지원, 연구개발 지원, 수출 지원 같은 정책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정책은 분명 필요하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기술, 시장 접근 기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원 정책만으로 산업 경쟁력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 산업 구조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중요한 차이가 나타난다. 산업 경쟁력이 높은 국가들은 대부분 산업을 기업의 집합으로 보지 않는다. 하나의 시스템으로 본다. 기업, 시장, 인력, 기술, 금융이 연결된 구조를 설계한다.


독일의 기계 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은 중소기업 중심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 매우 강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독일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특정 기술 분야를 지배하는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으로 성장했다. 이 기업들은 대부분 지역 산업 네트워크 속에서 성장했다. 대학, 연구기관, 부품 기업, 금융 기관이 함께 움직이며 산업 경쟁력을 만들어낸다.


대만의 산업 구조도 비슷한 특징을 보여준다. 대만은 중소기업 중심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력은 단순히 몇 개 기업의 기술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산업 네트워크와 국가 전략이 결합된 결과다.


대만 산업 정책의 특징은 기업 지원 정책보다 산업 설계를 우선한다는 점이다. 기업이 세계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산업 클러스터(cluster)를 만들고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금융과 기술 정책을 함께 설계한다. 이러한 정책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만들어낸다.

 

▲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 = 현대자동차 제공)

한국 산업 구조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한국은 빠른 경제 성장 과정에서 대기업 중심 산업 구조를 형성했다. 대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확보했고 수출 중심 경제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성장 경로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구조 속에서 형성되었다.


많은 중소기업이 일정 규모까지 성장하지만 그 이후 단계에서 성장이 멈추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매출 300억에서 1000억 사이 구간에서 성장 정체가 나타나는 기업이 많다. 이 구간은 흔히 스케일업(scale up) 구간이라고 불린다. 기업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단계다.


이 구간에서 많은 기업이 인력 문제, 금융 문제, 시장 접근 문제를 동시에 경험한다. 연구개발을 확대하려면 자금이 필요하고 시장을 확장하려면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러나 개별 기업이 이러한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대구 안경 산업 역시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다. 대구 안경 산업은 오랫동안 높은 기술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 많은 기업이 세계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생산 기술 역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 전체의 브랜드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술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의 문제다.


최근 반도체 산업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타났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로 등장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프라였다. 전력 공급과 산업 인프라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산업 경쟁력은 유지되기 어렵다. 이 사례는 산업 경쟁력이 단순히 기업의 기술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업 구조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기업의 노력만이 아니다. 산업이 움직이는 구조다. 그래서 앞으로의 산업 정책은 단순한 지원 정책을 넘어 설계 정책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지원 정책은 기업을 돕는다. 그러나 설계 정책은 산업을 바꾼다.


기업이 어떤 시장에서 성장하고 어떤 산업 네트워크 속에서 움직이며 어떤 단계에서 세계 시장으로 확장하는지를 함께 설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은 단기간에 성과를 만들기 어렵다. 그러나 한 번 구조가 만들어지면 산업 경쟁력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한국 산업은 지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지금까지의 성장 방식은 충분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앞으로의 산업 경쟁력은 새로운 구조 속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의 규모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기업 지원 중심 정책에서 산업 설계 중심 정책으로의 전환이다. 기업은 기술을 만들고 제품을 만든다. 그러나 산업의 미래는 구조가 만든다.


어떤 산업이 성장하고 어떤 산업이 사라지는가는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산업 구조와 정책 방향, 그리고 시장 전략이 함께 작동할 때 산업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지금 한국 산업 정책이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한 지원 확대가 아니다. 산업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계속 만들 것인가, 아니면 산업 구조를 설계하는 국가로 전환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한국 산업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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