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전략] 한국에는 왜 산업 공동 브랜드가 없는가

소상공인 이슈&분석 / 김경훈 대기자 / 2025-03-11 15: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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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생존 구조가 만든 시장 분열
지원은 개별 기업, 경쟁은 제 살 깎아먹기
분열된 산업 구조의 정책적 한계
▲ 국내 중소기업들이 개별적으로는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세계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는 원인을 '산업 단위 브랜드'의 부재 때문이다. 단순한 로고나 슬로건 제작 수준의 공동 마케팅을 넘어, 품질 표준과 공급망, 바이어 데이터를 산업 전체의 자산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구축될 때 비로소 개별 기업도 가격 결정권을 가진 진정한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다.(사진=벡스코)
 

 

한국의 수출 산업에는 개별적으로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기업이 많지만, 산업 전체의 이름으로 세계 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한 공동 브랜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업종의 기업들이 동일한 지역에 모여 있고 생산 품목 또한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해외 바이어의 인식 속에서 그것이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되는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은 개별 기업 단위의 납품처로만 기억된다.


예를 들어 대구의 섬유, 부산의 신발, 익산의 귀금속은 오랜 시간 축적된 생산 기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이름 자체가 품질 보증이 되는 구조’로 발전하지 못했고, 그 결과 기업들은 동일한 시장 안에서 협력 관계가 아니라 가격 경쟁 관계로 반복적으로 들어가게 된다.


산업은 존재하지만 산업의 이름이 브랜드가 되지 못하는 구조, 이것이 한국 중소기업 수출 구조의 가장 근본적인 단절 지점이다.이 현상은 기업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정책 설계 방식에서 출발한다.


한국의 중소기업 정책은 지원 단위가 철저히 ‘개별 기업’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동일 산업 안에서도 공동의 시장 전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동 전시관에 참가하더라도 기업별 부스가 분리되고, 공동 카탈로그가 제작되더라도 계약은 각 기업이 개별적으로 체결하며, 바이어 데이터 역시 기업 단위에서 단절적으로 축적된다.


그 결과 산업은 물리적으로는 집적되어 있지만 시장에서는 분열된 상태로 작동하게 된다. 또한 브랜드를 마케팅의 결과물로 인식하는 구조 속에서 공동 브랜드는 홍보 사업의 일환으로만 접근되었고, 공급망·품질 기준·가격 체계·사후 서비스까지 연결되는 ‘산업 시스템’으로 설계되지 못했다.


이 구조에서는 아무리 많은 기업이 모여 있어도 신뢰는 축적되지 않고, 동일 산업 내부에서의 경쟁만 반복된다. 대만은 공동 브랜드를 디자인하거나 슬로건을 만드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산업 단위의 품질 기준과 공급망을 먼저 통합했고, 그 결과로 브랜드가 형성되도록 설계했다.


타이중 공작기계 산업의 경우, 개별 기업의 이름보다 ‘타이중 기계 산업’이라는 인식이 먼저 형성되어 있으며, 이는 공동 연구개발(R&D, 연구개발), 표준화된 부품 공급망, 통합 전시 플랫폼을 통해 동일한 품질 수준을 유지하는 구조에서 출발한다.


◆ 자전거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완성차 기업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프레임, 변속기, 휠, 소재 기업이 하나의 산업 클러스터 안에서 동일한 시장 전략으로 움직이며, 해외 바이어는 특정 기업이 아니라 산업 전체를 신뢰하게 된다.


여기서 브랜드는 결과이며, 그 이전 단계에는 반드시 ‘공동 시장 진입 구조’가 존재한다. 한국은 기업이 모여 산업을 이루지만 시장에서는 다시 개별 기업으로 흩어지고, 대만은 개별 기업이 존재하지만 시장에서는 하나의 산업으로 작동한다. 이 차이는 홍보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통합 여부, 품질 기준의 공동 설계, 바이어 데이터의 산업 단위 축적 여부에서 발생한다.

 

한국의 산업단지가 생산의 집적이라면, 대만의 산업 클러스터는 시장 진입 구조의 집적이다. 공동 브랜드 지원 사업을 늘리는 것이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 단위의 공동 품질 기준을 설계하고, 바이어 데이터를 기업이 아니라 산업 자산으로 축적하며, 해외 전시를 개별 참가가 아니라 산업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구조다.


지원의 대상이 기업에 머무르는 한 산업은 분열된 상태로 남고, 산업이 분열된 상태에서는 어떤 기업도 가격 결정권을 가질 수 없다. 산업이 하나의 이름으로 시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구조에서는 어떤 기업도 브랜드가 될 수 없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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