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한국의 인력난은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간이 축적되지 않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사진 = 글로벌 ICT 제공) |
한국의 산업단지를 걷다 보면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듣게 된다. “사람을 못 구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것은 채용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에 가깝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한 기계부품 제조기업 대표는 구인 공고를 수개월째 내고 있지만 지원자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청년들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버티지를 못한다”는 짧은 답만을 반복했다. 하지만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다 퇴사한 청년의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임금 수준보다 더 큰 문제는 “여기서 5년을 일하면 무엇이 되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단순한 노동시장 수급 문제가 아니라 경로 설계의 부재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대기업은 직무 체계와 승진 구조, 그리고 이직 시장에서 통용되는 경력의 가치가 비교적 명확하게 설계되어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동일한 시간이 축적되더라도 그것이 산업 전체에서 인정되는 경력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청년의 입장에서 중소기업 취업은 “경력이 쌓이는 선택”이 아니라 “경력이 멈추는 선택”으로 인식되고, 이 인식이 인력 유출을 구조적으로 고착시키고 있다.
반면 대만의 산업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의 선택 기준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형성되어 있었다. 타이중(臺中)의 공작기계 클러스터에서 근무하는 한 엔지니어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이 산업 안에서 계속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업의 규모가 아니라 산업 내부의 이동 가능성이다. 대만의 중소기업은 개별 기업 단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클러스터 안에서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한 기업에서 다른 기업으로 이동하더라도 경력의 단절이 아니라 확장이 이루어진다. 즉, 직장이 아니라 산업을 기준으로 경력이 설계되는 구조다.
이 구조는 교육 시스템과도 연결되어 있다. 대만의 기술교육 체계는 특정 기업 취업을 목표로 하기보다 산업 내부에서 통용되는 기술 표준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그 결과 청년은 특정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산업에 진입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산업기술연구원(ITRI, 산업기술연구원)과 각 지역의 기술 대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교육과 취업, 그리고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시키면서 “취업 이후의 성장 경로”를 가시화한다. 청년이 중소기업을 선택하는 이유는 복지나 연봉이 아니라 산업 안에서의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대만의 차이는 결국 임금 수준이 아니라 시간의 가치가 어디에 축적되는가에 있다. 한국에서는 한 중소기업에서 쌓은 경험이 다른 기업으로 이동할 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만에서는 동일 산업 내 이동이 경력의 확장으로 인정된다. 이 차이는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의 설계 문제이며, 동시에 정책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대구·경북의 산업단지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기계, 섬유, 자동차 부품 등 지역의 핵심 산업은 여전히 높은 기술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청년층 유입은 줄어들고 숙련 인력의 평균 연령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섬유 기업 대표는 “기술을 가르칠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청년의 입장에서 보면 “기술을 배운 이후의 경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에 가깝다. 결국 인력 문제는 채용 정책이 아니라 산업의 성장 구조와 직결되어 있다.
정책의 질문도 여기에서 달라져야 한다. 청년을 중소기업으로 보내기 위한 지원금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이 구조를 바꿀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중소기업 내부의 임금 보전 정책이 아니라 산업 내부에서 경력이 이동하고 확장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즉, 기업 단위의 인력 정책이 아니라 산업 단위의 인력 생태계 설계가 필요하다.
대만이 보여준 것은 중소기업이 청년을 채용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 청년이 중소기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한국의 인력난은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간이 축적되지 않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결국 인재는 기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이동한다. 지금 한국 중소기업에 필요한 것은 채용 지원이 아니라 성장 경로의 설계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 소상공인포커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