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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제조 중소기업이 세계적 기술력을 갖추고도 ‘이름 없는 납품업체’에 머무는 원인은 마케팅 역량 부족이 아닌, 개별 기업에 브랜드 전환의 짐을 지우는 ‘고립된 산업 구조’에 있다. 제조 강국 대만이 ITRI와 TAITRA를 통해 B2B 기업의 브랜드화를 산업 시스템으로 뒷받침했듯, 우리나라도 기술 지원을 넘어 시장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공동 진입 플랫폼’ 설계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사진=pexels) |
한국의 제조 중소기업을 현장에서 만나보면 공통된 질문을 듣게 된다. “기술은 있는데 왜 우리 제품은 이름으로 팔리지 않는가.” 이 질문은 개별 기업의 마케팅 역량 부족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한국의 제조 중소기업은 오랫동안 B2B(기업간거래) 납품 구조 속에서 성장해 왔고, 그 과정에서 생산 효율과 품질 관리 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지만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주체가 되지 못했다. 제품은 존재하지만 기업은 보이지 않는 구조, 이것이 한국 제조 중소기업이 브랜드 전환에 실패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문제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시장과 만나는 방식이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의 B2B 제조기업은 생산 이후의 단계, 즉 유통·판매·브랜드 구축이 개별 기업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기업은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만으로도 자원이 소진되는데, 여기에 시장 개척까지 동시에 수행해야 하므로 결국 다시 안정적인 납품 구조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브랜드 전환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시도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대만은 이 지점에서 전혀 다른 경로를 선택했다. 대만 역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중심으로 성장한 제조 경제였지만, B2B 기업이 직접 시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산업 단위의 전환 장치를 만들었다. 그 핵심은 공동 연구개발 기관인 ITRI(공업기술연구원)와 TAITRA(대만무역발전협회)가 연결된 산업 플랫폼 구조다.
ITRI는 개별 기업의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기관이 아니라 산업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공통 기술을 선행 개발하고 이를 중소기업에 이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구조 덕분에 기업은 연구개발에 투입하던 시간을 시장 전략으로 전환할 수 있었고, 기술 확보 이후 곧바로 브랜드 구축 단계로 이동할 수 있었다. 기술 개발과 시장 진입이 분리되어 있던 한국과 달리 대만은 기술 이후의 단계가 시스템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 시장 진입 방식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대만의 대표적인 산업 전시회인 COMPUTEX(컴퓨텍스), Taipei Cycle Show(타이베이 사이클 쇼), TIMTOS(타이베이 공작기계 전시회)는 단순한 제품 전시 공간이 아니라 계약이 이루어지는 유통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바이어 매칭, 공동 브랜드관 운영, 사후 수출 관리까지 하나의 구조로 연결되기 때문에 B2B 제조기업이 브랜드를 달고 직접 시장에 등장할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가 발생한다.
납품 기업이던 회사가 최종 소비자와 만나는 순간 가격 결정 구조가 바뀐다. 더 이상 원가와 납품 단가가 아니라 브랜드 가치와 시장 수요가 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대만의 자전거 기업 Giant(자이언트)와 Merida(메리다), 공작기계 산업의 Hiwin(하이윈)과 같은 기업은 모두 OEM 기반에서 출발했지만 산업 플랫폼을 통해 자체 브랜드로 전환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을 스스로 정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반면 한국의 B2B 제조기업은 여전히 개별 기업 단위로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고, 개별적으로 바이어를 만나며, 개별적으로 브랜드를 구축하려 한다. 산업 단위의 공동 진입 구조가 없기 때문에 브랜드 전환이 기업의 모험이 되어 버리고, 실패 위험을 감당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은 다시 납품 구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B2B에서 브랜드 기업으로의 전환은 기업의 의지나 마케팅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설계의 문제다.
◆ 대만은 기업에게 브랜드를 만들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브랜드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먼저 만들었다. 이 차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존재감 격차로 이어졌다. 지금 한국의 제조 중소기업 정책이 다시 질문해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왜 기술 지원은 반복되는데 시장에서 이름으로 팔리는 기업은 늘지 않는가. 왜 우수한 부품 기업은 많지만 완제품 브랜드 기업은 제한적인가. 왜 중소기업은 여전히 가격 협상력이 없는 구조에 머물러 있는가.
브랜드는 기업이 결심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브랜드는 시장과 만나는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다. 한국 제조 중소기업이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원 사업이 아니라 B2B 기업이 산업 단위로 시장에 등장할 수 있는 공동 진입 플랫폼의 설계다. 보이지 않는 제조를 보이는 기업으로 바꾸는 일은 마케팅 교육이 아니라 산업 구조 전환의 문제다.
● 정보 코너 │ B2B 제조기업의 브랜드 전환을 만든 대만 구조 ITRI(공업기술연구원)산업 공통 핵심 기술 선행 개발 → 중소기업 이전 → 시장 전략 집중 가능 구조 TAITRA(대만무역발전협회) 전시회 + 바이어 매칭 + 수출 계약 + 사후 관리 통합 운영 산업 공동 브랜드관 개별 기업이 아닌 산업 단위로 글로벌 시장 진입 Giant(자이언트) / Merida(메리다) OEM → 자체 브랜드 → 글로벌 가격 결정 구조 확보 메시지 결론 B2B 기업이 브랜드 기업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이유는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이동 경로가 산업 구조 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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