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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플랫폼을 창구로 활용하되 주거래는 자체 네트워크로 소화하는 대만의 전략은 한국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히 '어디에 팔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시장 관계를 자산으로 축적할 것인가'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이미지=산업통산자원부) |
온라인 판매가 늘었다는 통계는 계속 발표되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소상공인의 체감은 전혀 다르다. 주문은 늘었는데 축적되는 것은 없고, 고객 데이터는 쌓이지 않으며, 거래가 반복될수록 협상력은 오히려 낮아진다. 디지털 전환이 진행될수록 사업이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더 취약해지는 역설이 나타나는 이유는 기술 도입의 속도가 아니라 시장에 연결되는 방식이 플랫폼 중심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디지털 유통 구조는 접근성은 높지만 주도권이 없는 구조다. 입점은 쉽지만 관계는 형성되지 않고, 판매는 발생하지만 브랜드는 남지 않는다. 거래는 플랫폼 내부에서 완결되기 때문에 기업은 고객을 만나지 못하고, 데이터는 플랫폼에 귀속되며, 가격은 알고리즘이 결정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기업의 손익 구조는 매출 규모와 무관하게 외부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형태로 굳어진다. 디지털 환경으로 이동했지만 산업 구조는 여전히 납품형 거래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 디지털은 기술이 아니라 권한의 문제다
대만은 디지털 무역을 기술 도입 사업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핵심은 온라인 판매 채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과 직접 연결되는 통로를 국가 단위에서 설계하는 데 있었다. TAITRA(대외무역발전협회)는 전시회를 오프라인 계약의 장으로만 운영하지 않고 디지털 플랫폼과 연동해 바이어 데이터, 거래 이력, 상품 정보가 축적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기업은 단순히 제품을 등록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단위의 공급망 안으로 편입되고, 이 과정에서 반복 거래가 형성되며 시장 관계가 누적된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는 판매 채널의 수가 아니라 거래의 성격이다. 한국의 디지털 전환이 ‘어디에 입점할 것인가’의 문제라면, 대만의 디지털 무역은 ‘어떤 시장 구조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의 문제였다. 전자는 플랫폼 의존도를 높이고, 후자는 시장 관계를 자산으로 만든다.
실제 사례를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대만의 공구 제조 중소기업 상당수는 Amazon(아마존)이나 Alibaba(알리바바)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 입점해 있지만 매출의 중심은 자체 바이어 네트워크에서 발생한다. 플랫폼은 신규 거래를 만드는 창구로 활용될 뿐 장기 거래의 기반은 산업 협회와 전시 플랫폼을 통해 구축된 관계에서 나온다. 반면 한국의 제조 소기업은 동일한 플랫폼을 사용하면서도 거래의 대부분이 단건 판매로 끝나고, 반복 주문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같은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지만 산업 설계가 다르기 때문에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 구조는 물류 시스템과도 연결된다. 대만은 중소기업 전용 글로벌 풀필먼트 체계를 구축해 소량 다품종 생산 기업도 해외 직배송이 가능하도록 만들었고, 물류비는 개별 기업이 아니라 집적된 산업 단위에서 낮춘다. 거래 규모가 작아도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는 동일한 조건의 기업이 물류비 때문에 해외 판매를 포기하는 경우가 반복된다. 디지털 전환이 기업 단위에서 진행되면 비용은 늘고 경쟁력은 약화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정책의 질문은 여기서 달라져야 한다. 온라인 판로를 몇 개 더 만드는 것이 디지털 전환의 성과인지, 아니면 중소기업이 시장 관계를 직접 축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인지에 따라 정책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까지의 방식은 플랫폼 입점을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산업 단위의 디지털 무역 인프라를 설계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디지털 무역의 핵심은 화면 안에서 상품을 파는 기술이 아니라 시장 안에서 관계를 축적하는 구조다. 중소기업이 플랫폼 안에서 판매자가 되는 순간 가격 경쟁에 묶이지만, 시장 안에서 거래 주체가 되는 순간 브랜드와 협상력이 만들어진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고, 경쟁력을 만드는 것은 구조다.
지금 한국의 소상공인 정책이 물어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더 많은 플랫폼에 입점시키는 것이 목표인지, 아니면 플랫폼 없이도 시장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산업 인프라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디지털 전환의 성패는 접속 속도가 아니라 주도권의 위치에서 결정된다.
결국 디지털 무역은 온라인 판매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설계의 문제다. 중소기업이 데이터를 쌓고, 거래를 반복하고, 관계를 자산으로 만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면 매출이 늘어도 경쟁력은 남지 않는다. 반대로 시장과 직접 연결되는 통로가 만들어지면 규모가 작은 기업도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간다. 디지털은 기술이 아니라 권한의 문제다.
● 정보 코너 │ 대만 디지털 무역 구조 핵심 – TAITRA(대외무역발전협회) 온라인 바이어 매칭 시스템전시·상담·계약 데이터를 통합 관리 → 반복 거래 형성 – 중소기업 글로벌 풀필먼트 공동 물류 소량 수출 기업도 해외 직배송 가능 → 물류비 구조 개선 – 산업 협회 기반 B2B 플랫폼 개별 기업이 아닌 산업 단위로 시장 진입 → 신뢰 축적 구조 |
소상공인포커스 / 김경훈 대기자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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