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광둥성 둥관(东莞)은 오랫동안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다. 개혁·개방 이후 해외 기업의 주문을 받아 전자제품과 의류, 가구, 완구 등을 생산하면서 중국 수출 제조업을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둥관을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조립생산기지로만 보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둥관은 스마트폰과 통신장비, 반도체, 센서, 산업용 로봇, 신소재, 신에너지 부품이 집적된 첨단 제조도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둥관의 가장 큰 경쟁력은 세계적인 완제품 기업 한두 곳이 아니라 수십만 개 제조기업이 촘촘하게 연결된 공급망에 있다. 둥관시 정부에 따르면 지역에는 약 22만 개의 산업기업이 활동하고 있으며, 규모 이상 공업기업은 1만4,000개를 넘어섰다. 국가급 전정특신 ‘작은 거인’ 기업은 300개 이상, 광둥성급 전정특신 기업은 3,3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민영경제는 둥관 전체 수출입의 60% 이상과 세수의 약 70%, 혁신 성과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핵심 기반으로 평가된다.
이는 둥관 경제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전이 화웨이와 텐센트, DJI, BYD 같은 글로벌 기술기업의 본사와 연구개발 기능을 담당한다면, 둥관은 이들 기업과 세계 전자산업에 필요한 부품과 장비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생산 플랫폼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 한 대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회로기판과 카메라 모듈, 센서, 금형, 배터리, 케이스, 정밀부품, 포장과 물류기업이 가까운 거리 안에서 연결돼 있다. 새로운 제품을 설계하면 필요한 부품을 신속하게 조달하고, 시제품을 제작한 뒤 곧바로 양산체계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다.
◆ 둥관은 이러한 제조 경쟁력을 바탕으로 단순 가공무역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둥관시의 2026년 정부업무보고는 신세대 전자정보산업이 1조 위안 규모의 기반을 형성했고, 고급 장비제조업은 5,000억 위안, 신소재산업은 1,000억 위안, 신에너지산업은 800억 위안, 반도체·집적회로산업은 600억 위안 규모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첨단 제조업 증가액이 규모 이상 공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2%를 넘어섰다.
이 같은 변화는 둥관이 더 이상 해외 기업의 설계도에 따라 제품을 조립하는 도시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외국 브랜드의 주문과 기술에 의존했다면, 현재는 반도체와 산업장비, 첨단소재, AI 기반 제조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 제조업의 중심이 노동력과 가격 경쟁에서 기술과 속도, 품질과 공급망 대응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 둥관의 산업전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역은 송산호 과학도시다
송산호는 화웨이를 비롯한 전자정보기업과 로봇, 바이오, 신에너지, 신소재 기업이 집적된 첨단산업 거점이다. 둥관시는 송산호와 선전 광밍과학성을 연결해 웨강아오 대만구의 연구개발과 기술사업화 중심지로 육성하고 있다. 기초연구는 연구기관과 대학이 담당하고, 기업은 이를 제품과 서비스로 전환하며, 둥관의 제조 공급망이 양산을 지원하는 구조다.
특히 화웨이가 연구개발 및 주요 사업기능을 송산호로 확대하면서 둥관의 산업적 위상도 달라졌다. 선전과 둥관은 더 이상 개별적인 경쟁도시가 아니라 하나의 산업권으로 작동하고 있다. 선전에서 기술과 제품을 기획하고 둥관에서 부품을 조달해 생산한 뒤, 선전항과 광저우항, 홍콩을 통해 세계시장으로 수출하는 산업 분업이 형성된 것이다.
둥관이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끊임없는 기술개조와 디지털 전환이다. 둥관시는 국가 제조업 신형 기술개조 시범도시와 중소기업 디지털 전환 시범도시로 선정됐으며, 규모 이상 공업기업의 약 70%가 디지털 전환을 추진한 것으로 집계했다. 최근에는 AI 응용 중간시험기지까지 확보해 제조현장에서 인공지능을 실제 생산에 적용하는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둥관의 공장에서는 생산설비에 센서와 AI를 적용해 불량률을 줄이고, 설비 고장을 사전에 예측하며, 주문량에 따라 생산계획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산업용 로봇과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산과 품질, 재고, 물류데이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노동집약적 제조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중국의 인건비 상승과 인구구조 변화, 동남아 국가와의 가격 경쟁이 심화하면서 과거와 같은 저비용 생산모델은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둥관은 공장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대신 기존 공장의 자동화와 고도화를 추진하고, 핵심부품과 산업장비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바꾸고 있다.
둥관의 2026년 산업정책도 이 같은 흐름을 분명히 보여준다. 둥관시는 올해 1억 위안 이상 투자사업 360건과 10억 위안 이상 사업 20건을 유치하고, 산업기술 개조 기업 1,100개와 기술개조 투자 750억 위안, 전체 산업투자 1,600억 위안을 추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공장 수를 단순히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생산시설을 첨단화하고 전략산업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 둥관의 각 진(镇)도 지역별 특성에 맞는 산업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강진은 전자정보와 반도체·집적회로, AI를 중심으로 세 개의 500억 위안급 산업클러스터를 육성하고 있으며, 저공경제와 AI 연산수요를 새로운 투자유치 분야로 제시했다. 스제진은 전자정보산업을 중심으로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장비, 집적회로 관련 기업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차오터우진은 전자정보와 전기기계산업을 기반으로 저공경제와 신에너지, 신소재, 산업용 장비 분야를 확대하고 있으며, 2028년까지 저공경제 생산액 30억 위안과 신소재산업 100억 위안 규모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량진 사례도 주목 할 만하다. 대랑은 전통적으로 모직물과 의류산업이 발달한 지역이지만 최근에는 전자상거래와 브랜드, 디자인을 결합해 전통산업을 고도화하고 있다. 2025년 대랑의 전자상거래 사업자는 7,000개를 넘어섰고, 전자상거래 판매 규모는 약 190억 위안,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는 40억 위안 수준으로 확대됐다. 전통 제조업도 디지털 유통과 글로벌 판매망을 결합하면 새로운 성장산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 둥관의 제조업은 글로벌 무역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둥관은 생산한 전자제품과 부품을 미국과 유럽, 일본뿐 아니라 아세안과 일대일로 참여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의 동남아 생산기지 확대에 따라 둥관에서 핵심부품과 산업장비를 생산하고 베트남과 태국, 인도네시아 공장으로 공급하는 새로운 분업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는 중국 제조업의 해외 이전이 반드시 둥관의 쇠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단순 조립공정은 동남아시아로 이동할 수 있지만, 제품 설계와 핵심부품, 생산장비, 금형, 품질관리 기능은 여전히 둥관에 남아 글로벌 공급망을 통제할 수 있다. 둥관이 고부가가치 영역을 확보한다면 해외 생산 확대는 오히려 부품과 장비 수출을 늘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둥관의 성장에 위험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중 기술경쟁과 관세정책, 글로벌 소비 둔화는 수출제조업 비중이 높은 둥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부동산 경기침체와 내수 부진도 제조업 중심 경제의 약점으로 지적된다. 둥관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해외 주문과 대기업 공급망에 의존하는 구조를 넘어 자체 브랜드와 원천기술, 서비스산업을 강화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대기업은 AI와 자동화설비에 투자할 여력이 있지만, 소규모 부품기업은 자금과 전문인력이 부족해 전환 속도가 느릴 수 있다. 둥관시가 추진하는 중소기업 디지털 전환 정책이 장비구매 지원에만 머물지 않고 데이터 관리와 인력교육, 공동 플랫폼, 금융지원까지 연결돼야 하는 이유다.
◆ 둥관과 비교할 수 있는 한국 산업도시는 구미다
두 도시는 모두 전자산업과 대기업 생산기지를 중심으로 성장했고, 최근 반도체와 로봇, 미래차, 방위산업 등으로 산업구조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둥관은 수많은 전문 중소기업이 도시 전역에 분포하며 완제품과 부품, 장비, 물류를 하나의 공급망으로 연결한 반면, 구미는 일부 대기업의 생산과 투자 변동에 지역경제가 크게 영향을 받는 구조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한국 산업도시가 둥관에서 배워야 할 점은 공장을 많이 유치하는 방법이 아니다. 지역 중소기업이 대기업 공급망에 참여하고, 자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며, 새로운 완제품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개조와 AI 제조혁신, 시험·인증, 수출지원과 정책금융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해야 한다.
소상공인과 지역 서비스기업에도 둥관의 변화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제조업이 첨단화될수록 산업용 소프트웨어와 설비 유지관리, 품질검사, 물류, 디자인, 전자상거래, 특허, 회계, 교육 등 전문서비스 수요가 늘어난다. 미래 제조도시는 공장만 성장하는 도시가 아니라 수많은 서비스기업과 전문 사업자가 함께 성장하는 도시다.
※ 지역경제진단
둥관은 과거 ‘세계의 공장’이라는 이름으로 성장했지만, 현재는 단순한 조립생산 도시에서 벗어나 세계 제조 공급망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첨단산업도시로 전환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22만 개 산업기업과 수천 개 전정특신 중소기업, 송산호의 연구개발 역량, 선전과 연결된 산업 분업, 제조현장의 AI·디지털 전환이 있다.
둥관의 진정한 경쟁력은 대기업의 숫자가 아니라 제품 하나를 빠르게 설계하고 시험하며 양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촘촘한 전문기업 네트워크에 있다. 선전이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만든다면, 둥관은 그 기술을 실제 제품으로 완성해 세계시장에 공급한다.
대한민국 지역경제도 대기업 공장 유치와 투자금액만으로 산업정책의 성과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지역기업이 핵심부품과 장비, 소프트웨어, 서비스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공급망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산업도시가 만들어진다.
미래 제조업의 경쟁은 누가 더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빠르게 기술과 부품, 인재와 시장을 연결하는가에서 결정된다. 둥관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 제조혁신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한국의 구미·창원·천안·아산과 같은 산업도시가 반드시 깊이 연구해야 할 중국 제조업 전환의 대표 사례다.
소상공인포커스 / 서정선 칼럼니스트 jacobxu0304@gmail.com
[필자 주요약력]
現 INTERPRO H.K PEF 대표
現 일요주간 부회장
前 Proton International LLC (H.K) 법인장
前 Proton Asia PEF GP
前 Proton Asia PEF
아시아 국제 금융 법률,회계 전문위원
前 화중 테크 대표이사
前 화중아이앤씨 대표이사
前 중국 대련보세구 정부 위촉 외자유치 및 투자 구조 자문 대표
前 중국 천진 한화종합유한공사법인장
前 중국 주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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